맹자孟子는 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이라 하여
부모구존 형제무고일락 父母俱存 兄弟無故一樂
앙불괴어 천부불작어인 이락仰不愧於天俯不作於人二樂
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락야 得天下英才 而敎育之三樂也
부모님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아무 탈 없이 평안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천하의 총명한 인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공자(孔子)도 인생을 사는 세 가지 즐거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아
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아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아.
배우고 때에 맞추어 익히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 하는 친한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해석해 보면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천하의 왕이 되는 것은 세 가지 즐거움에 넣지 않는다며 세속적 권력과 돈과 명예를 좇는 행위로써는 군자의 즐거움에 결코 다가설 수 없음을 경고했다.
본디 왕이라는 존재는 우리들을 지키라고 만든 자리이다. 처음에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만든 자리에 걸맞은 이름을 지으려고 깨달은 자에게 물어보았다.
깨달은 자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사람들에게 그 자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해 주는 일을 하는 자리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깨달은 자는 한참을 고민해 봐도 자리에 어울리는 이름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눈을 감고 사색에 잠겼다.
그러던 중에 어디선가 왕왕하는 소리가 들렸다.
깨달은 자는 놀라 황급히 눈을 뜨고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불철주야 잠도 자지 않고 사람들을 지켜주는 충직하고 배신하지 않는 사람들의 오랜 친구 개가 왕왕거리며 깨달은 자가 혹시 사람들을 해칠까 봐 눈을 부릅뜨고 짖고 있었다.
유레카!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해 주는 자리의 이름은 '왕' 만한 것이 없다고 깨달은 자는 깨달았다.
깨달은 자는 차마 왕이라는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사람들에게 고백하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은 부르기 좋고 어쩐지 위엄도 있어 보이는 이 왕이라는 이름에 매우 흡족해하면서 깨달은 자에게 감사하며 돌아갔다는 왕에 얽힌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다.
이처럼 사람 곁에 충직한 친구로서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왕이 사람들로부터 위임한 권력을 독점하고 도리어 사람들 위에서 백성들을 핍박하고 수탈한 역사가 왕이라는 자리가 마련된 이래 계속되어 온 것이 어쩌면 인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춘추전국시대 주유천하를 하면서 쉼 없이 학문과 현장을 오가며 유리걸식도 마다하지 않았던 공맹이 본 춘추전국시대의 왕들은 왕도정치라는 초심에서 벗어나 오로지 패도정치만을 추구하는 것을 확인하고 낙담과 절망 속에서 어떤 희망을 보았을지 궁금하다.
그 낙담과 절망이 공맹으로 하여금 군자삼락이라는 배운자가 가질 수 있는, 누구도 뺏을 수 없는 천부의 락으로 공자와 맹자가 함께 입을 맞춘 듯 하모니로 이야기하니 범부로서는 그저 웃음이 절로 나와 웃고 또 웃다 보면 웃으면 복이 오듯이 일소일락一笑一樂하는 군자삼락君子三樂의 즐거움도 넝쿨째 다가오는 기시감에 사로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