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세상에서 문명으로 밝히는 빛이 그 어떤 말이나 글보다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웅변한다.
모닥불로 시작하여 전깃불까지 달려온 우리 인류에게 있어 불, 즉 에너지는 알파요 오메가이며 문명의 근원이다.
모든 갈등과 다툼 그리고 전쟁까지도 에너지를 둘러싼 헤게모니를 누가 쥐느냐라고 하는 주도권의 싸움이다.
우주가 폭발로부터 탄생하여 팽창하는 거대한 우주 안에 존재도 알 수 없는 미약한 미립자에 불과한 생명으로서 우리 인간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다는 것을 마치 알고나 있는 듯 불을 발견한 이래 모닥불이 횃불이 되고 횃불이 장작불이 되고 호롱불 같은 등불이 문명을 밝혀 과학기술로 불을 연쇄적으로 폭발시키는 화약을 발명하여 시원을 알 수 없는 우주 폭발의 섭리 속으로 한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생물학적 죽음 이전에 사회적 죽음을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 즉 his story 가 history가 되어 역사를 견인하여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죽음의 상인으로 낙인찍힌 체 생물학적 죽음 이전에 사회적 사망선고를 먼저 경험한 알프레드 노벨의 부고기사는 비록 오보였다고 할지라도 노벨에게 있어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게 하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와 인류에게 있어 노벨상이라는 모두가 도달하고 싶은 문명의 가치를 선사했다.
역사를 끌고 가는 영웅英雄들이 리더로서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업적을 이루고 인류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지만 세상은 그들을 십자가에 매다는 경우가 반복된다.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 식물이 자기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가용자원을 동원하여 영롱한 꽃봉오리를 피우듯이 수컷에게 어울리지 않는 꽃부리 영을 달고 있는 영웅英雄들은 죽음에서 살아 나와 세상에 화려한 문명의 꽃을 피우고 사라지고 되살아나는 죽음에서 되돌아온 자들이다.
죽고 죽어 거듭나는 경험 없이 영웅英雄이 된 자도 드물고, 죽음을 경험하지 못하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은 영웅英雄이라기보다 간웅奸雄에 가깝다.
"이승만은 1948년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한국전쟁 와중에 기틀이 세워지고 공산주의가 38선 이남까지 확산될 위협에 맞서야 했던 남한 정부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승만은 물론 그만큼이나 유명한 후계자 박정희 장군 역시 독재자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스 지음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중에서)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MIT대 대런 애쓰모글루(다론 아제 모을 루)와 제임스 A. 로빈스 시카고대 교수의 화두는 “왜 어떤 나라는 가난하여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고, 왜 어떤 나라는 부강하여 다른 나라를 지배할까?”에 대한 대답이 될는지 한번 생각해 본다.
노벨과 이승만과 박정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태어난 곳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죽음에서 살아 되돌아온 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대한제국 한성감옥에서 역모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집행 만을 기다리는 20대 젊은 사형수 이승만,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어수선한 정국에서 일어난 여순 반란사건의 숙군과정에서 즉결처분으로 죽을 위기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30대의 박정희, 대한민국 건국과 번영에 지대한 공로가 있던 두 사람이 노벨과 함께 죽음에서 되돌아온 자라는 사실은 대단히 훙미롭다.
이처럼 영웅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생사를 초탈하고 세상을 초월해야만 가능한 이야기다. 그렇지 못한 유력자들은 그저 제 배만 불리고 세상을 이용하여 세상사람들에게 부러움과 해악만 끼치는 간웅일 뿐이다.
20대에 죽음에서 돌아온 이승만은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여 기어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정부수립을 이끌어 냈고, 30대에 죽음에서 돌아온 박정희는 불굴의 투지로 번영된 대한민국의 초석을 깔았다. 그리고 죽기 직전 말년에 죽음에서 돌아온 노벨은 그의 전 재산을 털어 인류의 위대한 문명의 가치를 북돋우는 노벨상을 만들었고 올해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노벨과 함께 죽음에서 돌아온 자, 이승만과 박정희를 다루었다니 영웅을 만드는 역사의 평행이론 앞에 선 한 사람으로서 그저 경이롭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