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실종된 존재는 누구일까?
물론 시대가 변천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부지기수 이겠지만 우리 문명이 농업혁명 이후 폭발한 잉여 농산물을 기반으로 하는 화폐경제를 만들어 부의 세습이 가능하면서 인류가 출현한 후 자연스러운 모계혈통이 문명이 불러온 가부장 제도에 의해 물러나고 가부장이라고 하는 남성성이 문명의 주역으로 등장하여 가부장은 가장이 되고 가장은 어른으로 변모되어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
영감님 , 어른, 어르신이란 호칭도 불과 한세대 전만 해도 존경까지는 아니지만 적절한 권위와 사회적 합의를 가지고 젊은 세대의 부족한 경륜과 혜안을 채워주는 힘이 있었다.
문명으로 일으킨 과학이 백 년도 안되는 인생계뿐만 아니라 수십억 년의 생명탄생의 기원까지도 파헤친 결과 샤먼과 종교로 설명되던 거시계를 적분하고 미시계를 미분하는 생명계를 나누고 더하는 자연 과학이 종교를 지워감으로써 유일신을 부정하고 유일신이 인생계에서 창조한 가부장의 권위마저도 서서히 몰아낸 결과가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인지도 모른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셰익스피어의 5대 희곡 중 비교적 초창기에 집필한 작품이다.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기에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와 같은 여자들은 마녀이거나 말괄량이로 낙인찍혀 고분고분하게 가장을 따르는 요조숙녀에 비해 엄청난 탄압은 물론 목숨까지도 담보하기 어려운 세상을 살았다.
중세 암흑시대라는 종교가 인생계를 지배하던 시기에 마녀로 낙인찍혀 종교재판을 통해 화형을 당하는 시대의 희생양이 필요했던 이유도, 말괄량이 여성을 야생마 길들이듯이 길들여야 했던 까닭도, 유일신을 모태로 탄생했던 가부장적 질서를 공고히 하지 못하면 언제라도 문명 이전의 모계 원시 사회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가부장들의 절박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마녀사냥과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통해 모계 사회의 흔적을 지우고자 했던 가부장들이 우주에 대한 호기심으로 자연을 과학과 수학으로 미분하고 적분한 결과가 의외로 모계사회가 인류의 주류였음을 확인하고 증명한 남녀와 자웅의 역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대략 난감하다.
남녀평등을 너머 여성 상위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가부장제는 점점 더 시대착오적 제도로 굳어져가고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 땅의 가장들은 모조리 꼰대로 마녀사냥을 당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가부장이 가장이 되고 가장이 어르신이 되는 문명사회의 공식은 여지없이 깨어져 가고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아니라 어른 길들이기가 시대적 현상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줄 진정한 어른이 되기도, 진정한 어른으로 살아남기도 어려운 세상의 한가운데서 우리 인류는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