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한 집안을 덮치면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야 하며 국난이 한 나라를 덮치면 국민은 갈가리 찢겨진다.
질서는 말 그대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우선순위를 나라의 세포와 같은 나가 모여 국가의 질서를 정해야 하기에 나라는 국민의 숫자만큼 다양한 의견과 견해가 시시각각 분출되면서 힘의 논리에 따라 공공질서가 정해지는 치명적 씨앗이 뿌려지는 것이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말처럼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하나같이 원인에 따른 결과가 존재한다.
집안이 가난해진 것은 가장이 무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의 말을 듣지 않고 뿔뿔이 자신의 유익 만을 챙기는 식솔들의 책임도 크다.
마찬가지로 나라가 혼란한 것도 리더의 무능에 기인한 바 크겠지만 국민 각자 개개인이 사리분별을 못하고 적반하장과 같은 선동에 번번이 넘어가서 자신의 유익만을 각자가 좋은 방향으로 끝 간 데 없이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원인과 결과는 일란성쌍둥이처럼 따라다닌다. 2016년 탄핵정국의 광기가 여전히 그때와 마찬가지로 2024년 겨울에 대의정치의 중심인 여의도를 뒤덮고 있다.
국민의 뜻을 가로채기기 위해 혈안이 된 집단적 광기의 잔불은 여전히 진화되지 않고 혼란을 부추기며 국민의 선의를 악의로 뒤집어 씌우려고 하는 대의 꾼들의 악다구니 만이 수시로 악법을 양산하는 도깨비 소굴과도 같은 곳으로 우리를 유인하고 있다.
우리 인체도 뼈나 장기 등과 같은 하드웨어 안에 마이크로옴과 같은 미생물들이 밤낮으로 전쟁과 평화 휴전과 동맹을 통한 증식과 제거 그리고 유전자 교류를 통해 건강과 수명을 제어한다.
단순화시키면 거대한 미생물총인 우리 몸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익균, 유해균, 눈치꾼 균들이 치열하게 세력확장을 꾀하며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합종연횡을 거듭하고 있다.
자연의 섭리나 세상의 원리가 공히 유익:유해:눈치의 비율이 20: 20: 60으로 나뉘고 또 눈치 60 중에 31을 유익과 유해 중에 누가 가져가는가에 따라 51: 49로 유익이 승리하기도 하고 유해가 이기기도 하며 승부가 가려진다.
눈치를 보는 측은 늘 팽팽하다. 자신의 정체성이 없으므로 이리 보면 이것이 옳고 저리 보면 저것이 맞다는 중간자적 시각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박빙을 이루다가 눈치 보던 하나를 누가 데려오는가에 따라 박빙의 승부처는 순식간에 기울어지면서 대세가 판가름 난다.
나의 건강이던 나라의 번성이던 건강과 번성의 섭리와 원리는 매 한 가지이다.
유해균이 득세하지 못하게 유익균에게 나 하나부터 힘을 실어주는 것이 자연의 섭리요 세상의 원리이다.
나의 건강과 나라의 안녕을 지키기 위한 첫걸음이 누가 우리 몸을 갉아먹는 유해균인지 누가 우리 몸의 건강을 생각하며 고군분투하는 유익균인지 누가 교언영색을 남발하며 기괴한 논리로 국민을 기망하고 자기 자신의 방탄과 출세를 위해 나라의 SOC를 파괴하며 도리어 일관되게 국익과 자유의 가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을 적반하장의 논리로 뒤집어 씌우는가라는 눈치마저 없다면 나의 건강이나 나라의 안녕은 악랄한 디테일로 무장한 유해균에게 송두리 째 맡겨진 체 나락으로 떨어질 일만 남아 있다.
각자 맡은 바 자리에서 두 눈 뜨고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