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해 록] 하늘아래 새로운 것도 똑같은 것도 없다
기시감이라는 말을 가끔씩 한다. 중요한 사건이나 일에 맞닥뜨렸을 때 과거 마주친 경험이 있다고 느끼거나 타임루프처럼 사건전개가 반복되는 느낌에 직면하는 기이한 경험은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두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사건을 앞에 두고 사건을 바라다보는 자신의 생각이나 대처방법이 180도 달라지는 것에 스스로 화들짝 놀라는 경우도 경험하곤 한다.
동일한 인격체 안에서도 다중인격이 갑자기 툭 툭 튀어나오는 갑툭튀의 존재인 우리가 어떤 상황을 앞에 두고 일사불란한 의견일치를 보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고 부자가 천국에 가는 길 보다도 어려운 길이라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난세를 만날 때 우리 모두는 이 한계만큼은 극복해야 우리 후손의 갈 길이 열린다
대체로 인간의 뇌는 직전 경험에 많이 좌우된다. 사람과 사람이 조우하며 인생의 역사를 만들어 나갈 때 그 상대방의 직전 경험과 가치관이 어떠하였느냐가 만남 이후의 역사를 좌우한다.
체제(體制)에서 나타나는 구조의 결함 또는 무질서의 정도(degree of randomness), 모든 개방 체제(open system)는 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결국은 죽거나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환경과의 투입 산출의 교호작용(交互作用)을 통해 이러한 경향을 제거시키기 위하여 그 구조적 분화를 유지함으로써 엔트로피를 감소시켜 나간다. 이러한 점에서 조직체계의 구조적 분화와 개방성은 양립하는 또는 보강하는 관계가 있다.
말이 많이 어렵지만 공학도들이 머리를 싸매는 열역학 제2법칙에 등장하는 엔트로피를 사전적으로 정의한 개념이다. 나는 열역학을 배울 때 엔트로피를 무질서의 정도 (degree of randomness)로 받아들였는 데 기실 엔트로피는 그렇게 만만히 일대일로 치환될 수 없는 개념이며 단순히 물질이 고유하게 가지는 에너지와 위치뿐만 아니라 환경과 양립 보강하면서 엔트로피는 증가하기도 하고 감소시켜 나갈 수도 있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개념이 엔트로피라는 개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어떤 물질이 특정한 온도와 압력에서 특정한 값으로 가지게 되는 물리량, 엔탈피와 다르게 엔트로피는 열역학적 정의와 통계역학적 정의를 동시에 갖고 있는 확률적인 개념이다.
하늘 아래 똑같은 것이 비슷해 보여도 똑같은 것은 없듯이 일어나는 사건이 초유의 사건처럼 여겨져도 완벽히 새로운 사건은 없다는 것이다. 즉 하늘아래 새로운 것도 똑같은 것도 없다는 말이다.
역사의 평행이론과 같이 2016년의 겨울과 2024년의 겨울은 엔탈피적 관점에서 보면 비슷해 보이나 엔트로피적 관점에서 보면 천양지차이다.
미워도 다시 한번을 외치며 배신의 정치를 이어나가는 누군가도, 한 번은 실수이지만 두 번은 안 속는다며 국익수호를 외치는 누군가의 격정적 애국심과도 우리는 만나고 있다.
또 한편 스스로 혼란을 조장하고 사익과 방탄을 위해 국가의 공공재(SOC)를 타락을 너머 마비시키려고 하면서 특정 온도 특정 압력만 되면 마냥 갑툭튀로 튀어나오는 엔탈피 밖에 모르는 난파선을 버리고 탈출하는 쥐와 같은 세력들은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시간이 달라졌고 환경이 변했으며 무엇보다 지금은 조건 반사적이고 이차원적인 세상이 아니라 통계적이고 확률분포적이며 무질서도가 점차 증가하고 그에 따라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다층세상을 살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으며, 시대착오적 오류를 반복한다면 우리는 물론 우리 자손대까지 허허벌판에서 칼 손잡이를 잡지 못하고 칼날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엄혹한 역사의 평행이론, 하늘아래 새로운 것도 똑같은 것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라고 친절히 알려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