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해 록]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야만의 시대
야만과 문명을 나누는 경계는 무엇인가?
왜 우리 인류는 자연의 섭리에서 빠져나와 세상의 원리를 만들어 문명세상을 살려고 하는가?
현인과 광인의 차이가 박자 차이 이듯이 생명계를 주관하는 자연의 섭리 그리고 인생계를 좌우하는 세상의 원리에 대한 분별심 없이 한 생을 살다 보면 늘 박자는 어긋나고 스텝은 꼬이게 되어 있다.
손자병법에서 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 不知己. 每戰必殆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 부지기, 매전필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험하지 않다. 적을 모르되 나를 알면 한번 이기고 한 번은 진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움마다 위태하다라며 지피지기知彼知己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손자병법의 요체도 그 출발은 개별 생명체가 전쟁 중에 상대를 아는 것 못지않게 평시에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피지기知彼知己를 강조하는 것이다.
미시계인 생명계로 들어가면 지피지기를 하지 못하면 한 순간도 생멸의 허들을 넘지 못하나 거시계 인생계에서는 부지피, 부지기(不知彼, 不知己)가 기본값이라 부지피, 부지기한 무리들이 온갖 권모와 술수등 반칙과 변칙으로 지피지기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동과 왜곡 그리고 반복된 세뇌라고 하는 불의를 가지고 정의를 뒤집으려 혈안이 되어 우리가 사는 인생계를 혼란의 도가니로 빠트리면서 공동체에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하고는 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말과 같이 야만의 시대에 흔히 목도되는 광경이 누구도 달성할 수 없는 이상적 (ideal)인 어젠다를 그들의 사리사욕을 충족할 목적으로 선점해 놓고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모든 수단과 폭력을 정당화해 버리는 특징이 있다. 그러한 이상적인 허상에 기대어 대중을 끌고 가려는 자들의 기만적 구호가 국민을 위해서이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어 버리고 국민 민주주의라는 그럴듯한 구호를 수단으로 내세우며 궁극에는 자유가 말살된 인민민주주의라는 허울 밖에 없는 인민을 내세워 그들이 추구하는 일당독재의 시커먼 목적을 정당화하려 드는 데 있어 아주 이골이 난 무리들이다.
지족知足 하지 못하는 풍요의 시대에서 흔히 출몰하는 무리들의 특징은 입으로는 완벽이라는 달성하지 못할 헛된 구호로 반대파들보다 도덕적 우위를 먼저 선점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동체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언제나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집요하게 구성원 대다수의 자유를 야금야금 갉아먹다가 완벽하지 못한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회불만세력을 총동원시키고 폭력과 축제를 적당히 조종하고 여론의 방향을 검은돈에 매수된 매판 언론과 매스미디어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기어이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세상을 완성하려고 날뛴다. 이것이 바로 문명이 아닌 야만의 증거이다.
일사불란한 망동으로 자손만대까지 세습을 통해 호위호식하려는 1%의 특권 지배계층을 만들고 나머지 99% 국민들의 자유를 모조리 저당 잡아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려고 획책하는 야만의 낡은 이념의 준동은 마치 80년의 시계추를 돌려 해방정국을 찬탁과 반탁으로 갈라 치기하고 애국과 매국이라는 흑백프레임으로 세상을 재단하며 몰고 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혁명을 꿈꾸는 몽상가들이 재림한 것은 아닌지 헷갈릴 지경이다.
압축성장을 통해 껍데기만 선진국 모양이 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직면한 철 지난 진통을 겪으면서 역사에서 생략은 없다는 만고의 진리가 떠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