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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 백년전쟁 17, 망치와 모루 1950

by 윤해



7만 5천 명의 병력과 261척의 전함을 투입한 인천상륙작전 OPERATION CHROMITE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가른 15만 명의 연합군을 투입한 노르망디상륙작전 OPERATION NEPTUNE에 비해 규모는 작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석간만의 차이를 극복하고 아군의 희생을 최소화시키면서 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원수의 탁월한 결단만큼이나 작전명에 크롬이라고 하는 금속이름을 명명한 것의 의미가 새롭다.

높은 경도와 비중을 가지고 있어서 강철과 합금을 제조할 때 많이 사용되는 크롬이 들어간 합금은 내식성과 강도가 탁월하다. 즉 강철의 강도와 경도를 좌우하는 크롬은 망치와 모루뿐만 아니라 니켈 망간 텅스텐과 더불어 공구강을 만드는 재료로써 필수적인 금속이다.

1대 9의 고독한 결정으로 유엔군 총사령관의 직을 걸고 인천상륙작전을 단행한 맥아더의 머릿속은 미합참의장 브레들리와는 달리 오로지 전쟁의 승리만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있었고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그의 군대가 크롬이라는 금속을 철과 합금시켜 강철로써 북한군 병참선을 끊어버리고 서울을 수복하여 그의 군대를 강철로 만든 모루로 만들어 그 모루 위에 낙동강 전선에서 패주 하는 북한군을 올려다 놓고 낙동강 전선을 뚫고 북진하는 미 8군 사령관 워커의 부대가 망치가 되어 인정사정보지 않고 북한군을 두드리자는 망치와 모루 hammer and anvil 작전은 한국전쟁의 국면을 일거에 수세에서 공세로 돌려놓고 북한군의 사기를 단숨에 꺾어 광복 이후 우리 민족의 염원인 북진통일의 서광이 비추는 감격적인 순간을 마주한 계기가 맥아더 원수가 지휘한 인천상륙작전 OPERATION CHROMITE이었다.

작전과 전술에서 북한군을 압도했던 유엔군은 최소한의 희생으로 월미도를 거쳐 인천에 상륙하였고. 인천상륙작전의 눈부신 성공으로 병참선과 보급선이 끊긴 북한군은 공포와 패닉으로 맥아더의 예상과 같이 낙동강전선에서 퇴각하면서 오산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에서 막대한 병력손실을 입고 수도 서울로 들어온 북한군은 2만의 병력으로 유엔군의 서울입성을 저지하기 위해 서울사수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었다.

인공치하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 토굴로 은거했던 1908년 1월생은 가족을 인질로 협박하고 회유하는 인공이 만든 대학당국에 의해 토굴에서 끌려 나와 강압적으로 대학에 출근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인공치하 서울의 식량자원은 전방의 보급을 위해 샅샅이 공출당하여 거의 모든 서울시민들은 아사직전의 상황에 몰려서 토굴 속이나 밖이나 매한가지로 굶주림에 떨며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고 있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서부터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까지 13일이 걸린 것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과 싸웠던 미군의 전통적인 전투방식과는 다르게 서울을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은 B29 폭격편대를 동원하여 저항하는 일제의 수도 도쿄를 소이탄까지 사용하여 잿더미를 만들었고 이 단 한 가지 이유로 도쿄가 핵폭탄을 맞지 않은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군은 압도적 제공권으로 목표지점을 무차별 공습한 다음 미군의 희생을 최소화하며 목표지점을 함락하는 전통적인 전투방식을 서울수복작전에서는 폐기하고 아군의 희생을 감내하고서라도 보병병력으로 시가전을 통해 야금야금 서울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아더의 결정으로 6.25 남침으로 졸지에 인공치하에 갇힌 150만 서울시민과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수도 서울의 문화재를 전화戰禍로부터 그나마 지켜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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