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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백년전쟁 21, 제한전制限戰 1950

by 윤해


인간이 공간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산다는 것은 말처럼 단순한 일이 아니다. 46조 개의 세포가 모인 인간, 우주의 별처럼 다양한 공간, 억겁의 흐름으로 켜켜이 쌓인 시간들처럼 무엇하나 우리의 인식체계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변수 앞에 그래도 입이 있다고 한 마디 씩 하기 위해 미래가 어쩌고저쩌고 너스레를 늘어놓기도 하지만 우리 인간은 기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늘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재단하느라 이골이 난 허튼짓과 삽질을 다반사로 하면서도 잘난 체하는 가여운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복修復된 서울에서 광란과 같은 복수復讐의 파도는 옥석玉石을 가릴 틈도 없이 또다시 인공치하에 있었던 수많은 생때같은 국민들의 생사를 톱질하고 있었지만 1908년 1월생은 그래도 주변의 도움으로 태어난 이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 이어 그가 마주한 세 번째 전쟁, 6.25 전쟁의 파고를 무사히 넘고 독립전쟁에서 1932년 순국한 1908년 6월생 매헌과는 달리 살아서 독립된 조국이 통일되는 그날이 눈앞에 왔음에 감격하면서 서울 수복전투 중 가장 치열하여 인공치하 그가 숨어 은거했던 토굴마저 초토화되었던 연희고지 너머 대학으로 복귀했다.


2025년 미중 간의 갈등이 마주 달리는 폭주기관차 마냥 초한전超限戰으로 치닫고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의 치열한 전장이 된 한반도의 운명은 백 년이 흐른 2025년에도 여전히 히드라의 망령처럼 대한민국이 전장이라도 된 듯이 정부를 흔들고 탄핵과 내란이라는 초한전超限戰의 프레임으로 대한민국정부를 무정부 상태로 몰고 가고 늘 한반도 전쟁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생업을 사는 국민들이 의병이 되어 무너져가는 나라를 구하겠다고 아스팔트 위로 올라오고 백여 년 전 망국의 주역 을사오적들은 여전히 입법 사법 언론 행정권력을 틀어쥐면서 나라가 망하든 말든 국민이 도탄에 빠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일신의 영화와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을 향해 물불 가리지 않고 위법과 탈법을 밥먹듯이 하면서 초한전超限戰의 주구走狗 역할을 하는 역사의 평행이론 앞에 민주국가 대한민국의 주권자 국민들이 망국의 혼군 고종이 될지 말지는 오롯이 주권자 국민의 몫으로 다가오고 있다.


1950년 북진을 시작한 유엔군과 국군은 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금방이라도 압록강 두만강까지 내달려 통일이라는 민족적 숙원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염원으로 가득 찼지만 현실은 스탈린과 트루먼 모두 한국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발화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제한전制限戰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1950년 10월 15일,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을 남태평양 웨이크섬(Wake Island)으로 불러 만났다. 1945년 루스벨트의 죽음으로 대통령직을 물려받아 1948년 선거로 재선 된 트루먼 대통령이 정치권의 한국전쟁시비를 잠재우고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의 후광을 여론에 반영시킴으로써 미국 내 중간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효과를 얻어내려는 일종의 선거용 정치회담 성격이 짙었다.


대업에 사심이 들어가도 안되고 전쟁에서 도랑 잡고 가재 잡는 행운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트루먼과 맥아더 스탈린과 마오쩌둥은 한반도라는 전장에서 모두 각자가 제한전制限戰이라는 전쟁의 기술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다는 동상이몽을 꾸면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자신만이 한국전쟁이라는 장기판의 반상을 지배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어갈 수 있다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누구나 링 위에 올라가 맞아보기 전에는 그럴싸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마이크 타이슨의 말처럼 상대방이 있는 링 위보다 더 엄혹한 전장에서 북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바람같이 진격한 유엔군과 국군은 1950년 10월 2일 원산상륙 17일 함흥 사리원 동시수복 19일 평양 점령에 이어 파죽지세로 내달려 10월 26일 압록강 초산까지 도달하여 통일을 눈앞에 두었다는 착각마저 들게 하였다.


그러나 링 위에 올라올 준비를 마친 팽덕회가 이끄는 중공군은 이미 평양이 무너지기도 전, 1950년 10월 18일 한반도라고 하는 익숙한 링 위로 거의 그로기 상태인 궤멸직전의 북한군을 대신하여 낭림산맥과 개마고원이라는 한반도의 지붕을 기어올라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과 버금가는 대규모 반격 포위작전을 차근차근 실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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