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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 백년전쟁 22, 동장군冬將軍1950

by 윤해


봄이면 씨앗 뿌리고 여름에는 열심히 일하고 가을이면 거두어들이고 겨울이면 편하게 쉬는 것이 자연의 리듬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을 모르고 날뛰는 철부지처럼 동서남북 사방팔방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처럼 전쟁은 그렇게 사람들의 일상을 앗아가고 야만의 모습으로 계절을 바꾸고 있었다.


1950년 봄에는 따뜻하고 기만적인 유화 제스처가 빈번했고 여름 내내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온 나라에 뿌리더니 가을로 접어들어 수통에 압록강물을 떠서 담아 마시던 이름 모를 병사의 감격이 통일이라는 열매로 이어지고 그해 겨울 유엔군은 크리스마스를 집에서 보낼 희망으로 들떴고 국군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남북통일이라는 값진 열매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으로 설레었다.


유엔군 병사들이 그토록 원했던 벽난로 따뜻한 고향집도 국군이 꿈에도 갈망했던 통일이라는 민족적 염원도 낭림산맥을 타고 남하하고 적유령산맥에 걸쳐 산악에 스며든 중공군이 청천강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대공세를 무력화시키면서 한반도 북부의 동장군冬將軍으로 유엔군을 장진호에 가두어 미 해병사상 최악의 패배를 기록하게 했던 중공군의 인해전술은 현대전에서 마저도 아무리 막강한 해공군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최종적 승리의 깃발은 보병이 꽂는다는 평범한 전사의 교훈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매국괴뢰세력의 본거지이자 북한의 수도 평양을 점령하였고 그 직전 사리원과 함흥을 수복했다는 소식을 이제는 안정을 찾아가던 수도 서울에서 접한 1908년 1월생은 동갑내기 1908년 6월생 매헌이 1932년 상해에서 의거를 단행하고 순국할 무렵 자신은 식민지 조선에 남아 대학을 졸업하고 교육을 통해 후학을 길러내 자강 하는 것이 매헌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라 결심하고 교육자로서 첫발을 디딘 곳이 적유령 산맥과 낭림산맥을 너머 함흥평야가 동해바다까지 펼쳐지고 북한 최대 공업도시인 흥남질소비료공장이 위치해 있던 함흥이었다.


암울했던 일제치하에서도 거악의 질서는 존재했고 언젠가는 망국을 넘어 독립하였을 때 건국의 동량으로 커나갈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에게 신학문을 교육하고 미래를 준비했던 함흥에서의 열정의 세월이 국군의 함흥수복 소식을 듣자마자 1908년 1월생의 뇌리에 주마등같이 피어올랐다.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빨이 시리다는 대륙과 한반도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지정학적 관계가 패망직전의 매국괴뢰세력을 기사회생시킨 중공군 참전은 6.25 전쟁 발발 불과 8개월 전에 독립한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으로서는 국가의 명운이 걸린 결정이었다.


북극곰 소련의 스탈린이 매국괴뢰세력의 망명정부를 만주에 세우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고 하자 마오쩌둥은 자신들의 국토가 침탈되고 전장화 되어 미국과 일전을 할 바에야 그 전장을 한반도에서 수행하는 편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중국공산당 당무위원들을 설득하고 스탈린에게는 공군지원을 약속받고 압록강을 건너 대군을 한반도로 밀어 넣었다.


인천상륙작전 OPERATION CHROMITE 성공으로 크롬을 잔뜩 집어넣은 강철부대는 망치와 모루 hammer and anvil작전을 통해 적을 섬멸하고 자신의 부대를 담금질하여 질풍노도와 같이 북한군을 패주 시켰지만 과도한 크롬 함량은 금속재료의 인성을 줄이고 취성을 증가시켜 강철을 파괴하듯이 유엔군과 국군은 인천상륙작전 OPERATION CHROMITE이라는 극적인 승리에 도취되어 손자병법의 기본인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 知彼知己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每戰必殆를 어느덧 무시하고 있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험하지 않고 적을 모르되 나를 알면 한번 이기고 한 번은 지며,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움마다 위태하다는 손자병법을 까마득히 망각하고 중공군이 6700km 가까운 만리장성 길이의 참호를 파놓고 매복하고 있는 줄은 짐작도 못하고 유엔군은 승리만을 확신한 체 동장군冬將軍이 기다리고 있는 개마고원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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