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30
세련이라는 말을 자주 하고 늘 툭하면 쓰지만 그 말이 금속공학 용어와 연결됨을 이제야 알았다. 세련을 영어로 번역하면 polishing이라 한다. 금속의 단면 시편을 갈고닦아 경면과 같이 만들기 위해 사포 위에 손가락 물집이 잡히도록 연마하는 실험실 신참시절 혹독한 통과의례를 치른 기억이 폴리싱이란 한 단어로 소환된다.
그리고 폴리싱과 나란히 우리가 정련이라고 배운 refinement라는 단어도 polishing과 함께 세련의 영역단어로 사용되는 것을 보니 우리는 학창 시절 세련된(?) 행동을 참 많이 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는 살면서 세련이라는 말을 자주 하고 살며 그 말을 들으면 최고의 칭찬으로 여기며 어깨를 으쓱거리고, 반면에 순박하다거나 촌스럽다는 말을 들으면 괜스레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도시 남녀들은 생활의 모든 면에서 세련을 추구하다가 외양을 너머 내면까지 차도남 차도녀로 변모되어 가는 것이 오늘날 거역하기 힘든 시대상인 것 같다.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놓치고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아마 세련이라는 추상적 이미지에 빠지다 보면 왠지 차가우면 차가울수록 더 세련되어 보이고 쿨한 외모를 구하는 욕망만큼이나 마음에도 켜켜이 장벽을 쌓고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농경시대의 순박한 인심을 촌스러움으로 포장해 몰아내려는 사회적 압력이 대도시에 사는 우리에게는 늘 상존한다.
인간이 공간을 제어하지 못하면 공간이 인간을 구속하듯이 정신이 물질을 통제하지 못하면 물질이 정신을 좌지우지 끌고 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도시의 차도남 차도녀들이 물질로서 치장을 하고 사람과 사람들 간의 끈끈하고 순박한 마음을 촌스러움으로 치부하며 끊어나가는 사이 세상은 여백도 없고 틈도 없는 쿨하고 차가운 얼음으로 변했다.
이렇게 원래 연결된 관계에서 웃고 떠들고 헛소리도 주고받던 표정이 있던 우리가 고향을 떠나 도시에 정착하면서 도시라는 공간이 주는 명령을 빈틈없이 수행하는 사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분절화되고 이 분절된 삶을 세련된 삶이라 여기며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어느새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온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은 나만의 기우일까?
외양을 갈고닦는 폴리싱 된 우리에서 정신을 갈고닦는 정련된 우리로 하나하나 바꾸어 나갈 때 도시의 차도남 차도녀들이 따뜻하고 훈훈한 정을 갈고닦는 훈남 훈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