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9
석간고택의 현판 위로 퇴색한 서까래가 힘겹게 지붕을 이고 지고 있는 동안 뜰안에 곧은 향나무 한그루가 250년을 떡하니 버티고 있구나
문체반정, 어떤 의미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외연과 내면이 존재하듯이 글이나 사상에서도 체와 용은 늘 동전의 앞뒷면 같이 따라다닌다. 즉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체라고 한다면 그 체의 모습을 하고 끊임없이 변화하여 무언가에 계속 쓰임이 반복되는 것을 용이라 부를 수 있다. 이렇듯 체와 용이 합쳐진 형태 중에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바로 문화이다.
글이 글로서 만 소비되면 그야말로 허무하다. 하지만 글의 속성은 태생적으로 그렇게 소비될 여지가 다분하다. 글은 조그마한 재주만 가미되어도 경계가 없는 상상으로 비화되기 쉽다. 어쩌면 글은 우리 인생으로 보면 가불 된 미래요 먼저 긁은 신용카드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믿음을 가불 삼아 지불과 쓰임에 엇박자를 내다보면 늘 살림이 팍팍해지듯이 쓰임을 미룬 글은 우리에게 문화로서 자리잡기에는 어쩐지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눌변의 달필, 작가 이문열을 생각하면 어눌한 말주변과 대조적으로 세상을 보는 예리한 시각이 묻어나는 그의 글에서 그가 얼마나 엄혹한 성장기를 보냈는지 미루어 짐작이 된다.
새하곡, 사람의 아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제는 나의 기억 안에 줄거리도 희미한 그의 작품 속에서 세상의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 한마디가 경계에 서고 경계를 넘나든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문화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역사를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 한들 우리가 몸으로 부대끼고 살아온 현대사를 곡해한다고 한다면 매우 허망한 일이다.
그러나 등하불명 이라는 사자성어와 같이 의외로 현대사는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기 때문에 오히려 객관화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해석해 버리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문열의 글은 소설의 자유분방함에 더해 고통 속에서 승화된 작가의 경험과 달필이 예술적으로 조화된 특이한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영양 석보 두들마을의 재령 이 씨 입향조 석계 이시명이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은거하여 쓴 석계집 6권이 글을 배운 선비로서 문체(글 체면)를 세운 것이라면 그의 부인 장계향이 쓴 음식디미방은 문체반정을 통해 글이 어떻게 일용할 양식이 되는가를 시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후손들이 한집 건너 시인이요 두 집 건너 소설가요 세집 건너 의사를 자랑하기보다 두들마을의 자랑은 그들의 입향조가 세운 문체를 문체반정을 통해 글의 쓰임으로 바꾸고 기어이 문화로 예술적 승화를 시킨 한 사람의 현숙한 안 해와 그 안해에 의해서 대를 이어 내려와 뜰안에 곧게 자란 250년 된 향나무와 같이 글로써 체와 용을 문화로 승화시킨 이문열 같은 후손을 배출함으로써 두들마을은 이름 그대로 두드려서 열린 마을이 된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