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안의 미소년에서 백발의 주름진 노인으로

by 윤해


2024.03.19

얼굴은 한 사람의 얼이 깃든 굴이다. 이목구비로 대표되는 감각기관의 신비한 조합과 균형감을 가지고 그 사람의 미추를 구분하고 인상을 순식간에 파악하는 능력은 진화의 도상에 있는 우리 호모사피엔스가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생존전략의 하나였다.

미추는 학습된 인지라기보다는 유전자에 각인된 태생적 본능에 가깝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요람의 애기들도 잘 생기고 이쁜 사람을 보면 방긋방긋 웃는데 반해 험상궂고 추한 외모의 사람을 보면 금방 울먹거리며 울음보를 터뜨리는 것을 보고는 어떻게 걷지도 못하는 애기가 사람의 미추를 구분하지 하면서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선입관이 없고 본능만이 작동되는 애기의 맑은 눈이 오히려 백설공주의 미모를 시샘하는 왕비가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 누가 제일 이쁘니라는 질문에 답하는 왕궁의 거울과 같이 미추를 판단하는 순수한 감각인지도 모른다.

청춘의 봄날 젊은이의 외모는 피어나는 꽃봉오리 마냥 터질 것 같은 싱그러움과 향기를 가지고 저마다 봄꽃들의 향연같이 서로의 젊음과 미모를 뽐내기 바쁘다. 하루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최고 미남미녀가 되었다가 하루는 정신줄을 잡고 보니 불만투성이 외모에 비관도 하다가 뇌모가 성숙되지 못한 젊은이의 초상은 감정의 기복과 업다운이 심한 초라한 영혼일 따름이다.

저마다 홍안의 미소년이라 자부하던 젊은 초상의 일장춘몽이 깨어날 무렵 미모에서 뇌모로 갈아탄 우리는 드디어 꿈과 현실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별하는 성숙된 젊은이로 재탄생하여 생존경쟁의 도상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저마다 짝을 찾고 가정을 이룬 다음에는 이 세상에 가장 이쁘고 잘생긴 사람이 그냥 내 짝이라는 말 그대로 뇌를 씻는 세뇌를 거쳐 미모 지상주의는 한낮 연예계라는 피안의 영역에서 회자되는 먼 세상 이야기가 되고 현실은 남의 얼굴 나의 얼굴 평가할 새도 없이 어떤 이가 믿을 만 한가 어떤 이가 신의를 저버릴까를 판단하는 외모가 미추의 개념이 아닌 관상의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바뀐다.

그리고 드디어 마흔을 넘어서면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적 형질이 세를 다하고 그때부터 오로지 내가 홀로 서서 하루하루 나의 얼굴을 창조하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뿌린 데로 거두는 시절로 접어든다.

그렇게 환갑까지 이십 년 우리는 우리의 심신을 재창조하며 우리 얼굴에 우리가 살아온 이력을 세월의 훈장처럼 얼굴에 새기고 운명과 숙명에 반항하기도 하고 순응하기도 하며 인생 전반전을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다.

환갑을 너머 진갑에 접어들면서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여전히 또 많은 것들을 움켜쥐려 할수록 늘어나는 주름과 백발은 막을 수 없는 대세로 우리를 엄습하지만 여전히 꺼진 외모 대신 반짝반짝 광채를 더하는 뇌모가 발현되면 여전히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소리치는 돌아온 장고 같은 뇌색남의 절박한 모습이 거울에 비치면 나도 모르게 소스라치며 놀래곤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모든 것이 평균으로 회귀한다는 의미이다. 미추의 개념은 애초에 사라지고 다 같이 늙어가면서도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우리는 경험이 늘어가는 뇌색남이라 우기지만 떨어지는 해를 어떤 수로도 막을 수 없듯이 운명과 숙명에 순응하며 자연스러운 노화를 받아들이며 지혜로운 뇌모를 가꾸는 후반전이 된다면 나름 선방하고 잘 산 한생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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