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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인수(我田引水) , 타인능해(他人能解)

by 윤해


2024.03.20


아전인수(我田引水)라 쓰고 내 밭이 아니고 내 논에 물 끌어 오기라고 해석하면 아답인수(我畓引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논 답자를 파자하면 글자 그대로 수전(水田)이 된다.


농경시대에서 쌀은 단순한 곡식 이상이다. 그 시대 가치의 척도이고 화폐이며 생명과 같이 소중한 희귀재이고 피골이 상접한 굶주린 백성들에게 쌀로 만든 하얀 이밥은 쌀이 포동포동한 살로 바뀌는 마법을 부리는 농경시대 최고의 생산물로 자리 잡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쌀이라는 농경시대 최고의 생산물을 생산하는 밭에 물을 끌어와 만든 논은 문전옥답(門前沃畓)이라는 말과 같이 옥과 같이 기름지고 귀한 생산수단이요 굶주림을 벗어나 부의 원천이자 척도로 사용되어 백석지기를 넘어 천석꾼 만석꾼이라는 그 시대 최고 부자를 탄생시켰다.


예나 지금이나 1%의 부자가 99%의 자산을 독점하는 세상에서 변함없이 과거의 천석꾼 만석꾼들은 확률분포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밭을 장만하고 아전인수(我田引水)를 통해 논을 만들고 문전옥답(門前沃畓)을 만들어 문전옥답(門前沃畓)을 넓히고 확장하여 논으로 가득한 너른 들에서 천석꾼 만석꾼을 탄생시키기는 쉬우나 그렇게 탄생한 천석꾼 만석꾼들이 자기가 만든 재화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아전인수(我田引水)의 욕심들이 모여 모여 만들어졌다는 자각을 하고 사는 천석꾼 만석꾼은 드물다 못해 희귀하다.


사방백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경주 최부자의 구휼(救恤)과 영조 때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柳爾胄, 1726~1799)의 타인능해(他人能解)의 정신이 농경시대의 홍익인간의 이념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귀감이 되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대동사회(大同社會)를 열어 궁극적으로 지속가능한 부를 대를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쌀이라는 농업혁명의 재화가 화폐로 바뀌고 화폐가 진화하여 디지털화폐, 가상화폐로까지 바뀌는 세상에서 시장경제는 왜곡되고 정글 자본주의가 세상을 점령하고 백성을 헤아리는 구휼(救恤)과 타인능해(他人能解)는 찾아볼 수도 없는 세태에서 아전인수와 내로남불로 무장한 세력들이 악화가 양화를 야금야금 잠식하듯이 세상을 각박하게 하는 오늘날 운조루 누마루에 올라

"한 달에 한 번씩 뒤주가 비워지면 다시 쌀을 채워라. 굴뚝을 섬돌 밑으로 내어 밥 짓는 연기가 멀리서 보이지 않도록 하라.쌀이 없어 밥을 지을 수 없는 사람에겐 밥 짓는 연기만 보여도 속상할 수 있느니 뒤주는 중간 사랑채와 큰 사랑채에서 안채로 통하는 헛간에 두게 한다.”라고 후손에게 명하고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쓴 쌀뒤주를 내놓고 소출의 20%를 구휼한 한 선비의 생을 생각하면 지속가능한 공존의 정의는 세무민하는 구호에 있지 않고 조금이나마 나의 것을 나누는,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면서 구휼(救恤)과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하는 조용한 음덕(陰德)에서 비롯됨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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