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로 밝힌 문명은 말과 글이라는 매개체와 그 매개체의 애매모호함으로 인하여 반드시 여백이 존재하고 이 여백이라는 회색지대가 있기 때문에 의미와 결과가 유보되는 지체시간遲滯時間과 만난다. 가치價値는 이 지체시간遲滯時間이라고 하는 숙성과정을 견디지 않고는 매길 수 없는 값어치이다.
벼리고 벼린 날카로운 칼로 예리하게 무언가를 더하며 이익利益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호모 사피엔스의 오래된 지혜 속에 숨어있는 감추어진 본능이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한반도 전쟁의 포성을 멈춘 것이라면 1953년 10월 1일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일로서 6.25 전쟁의 전황을 역전하고 통일의 부푼 꿈으로 38선을 돌파하고 북진을 한 그날, 국군의 날과 날짜마저 동일한 한반도 평화가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전쟁과 평화가 종이 한 장 차이이지만 난폭한 외교, 전쟁이 가져온 참혹한 비극과 폐허는 실로 한반도를 원점에서 리셋시키고 삼천리 금수강산과 삼천만 우리 민족을 환골탈태換骨奪胎시킨 미증유의 대사변이었다.
마감시간에 쫓겨서야 작품이 나오듯이 물러서기 어려운 지경에 처하지 않고서는 변하지 않는 것이 인류의 오래된 속성이다. 정전협정 후 어수선한 포로교환도 마무리될 때쯤 한국과 미국은 새로운 관계로써 미래를 설정하기로 합의했다. 말이 합의에 의한 협정이었지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우남에 의한 우남을 통한 우남이 속한 대한민국의 설득과 협박 그리고 결연한 의지가 버무려지고 숙성된 가치외교의 교과서요 결정판이었다.
전쟁에서 수십만 명의 미군병사를 희생시킨 미국도 전쟁으로 수백만 명을 사상시킨 대한민국도 세기를 넘고 돌아 애증의 세월을 지나고 군정과 철수, 파병과 정전 사이 8년의 성상星霜을 지나 동맹이 혈맹으로 진주군進駐軍이 전우로 바뀌고서야 비로소 빈손으로 헤어져서는 절대 안 된다는 우남의 가치 외교가 거친 외교를 종식시켰고 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향후 두나라의 미래에 어떤 기능을 할지 정확하게 꿰뚫고 파악한 사람은 그 당시 오로지 우남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제1조 평화적 수단에 의한 해결, 무력에 의한 위협이나 무력 행사 삼가
제2조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인정될 때 서로 협의하며, 적절한 조치와 협의를 합의하에 취할 것
제3조 태평양지역에서 무력 공격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
제4조 상호 합의에 의하여 미국은 육·해·공군을 대한민국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이 허여하고 미국이 수락함.
제5조 본 조약은 각자의 헌법상 수속에 따라 비준되어야 하며 그 비준서가 양국에 의하여 워싱턴에서 교환되었을 때 효력을 발생한다.
제6조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이렇게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이듬해 1954년 11월 18일 미 의회의 비준을 거치면서 정식으로 발효된다. 2025년 10월 31일 12.3 비상계엄 직전 한 미는 워싱턴에서 장관급 회의를 가지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제3조에 명시된 무력공격의 범위를 확장하여 적국의 공격을 무력에 의한 공격뿐만 아니라 사이버전이나 우주로부터의 공격까지도 포함하는 내용을 추가하는데 합의했다.
1908년 1월생은 동갑내기 1908년 6월생 매헌이 중국의 백만 대군도 해내지 못한 일제의 상하이 점령군 대장을 비롯한 장군들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하고 순국한 1932년 당랑거철螳螂拒轍한 매헌의 독립전쟁과 같은 해 필마단기匹馬單騎의 우남도 국제연맹에서 일본의 야욕을 전 세계에 알려 일본을 국제연맹에서 탈퇴시키고 고립시킨 현란한 외교 경험을 살려 독립전쟁과 건국전쟁 그리고 한국전쟁까지 일상의 외교뿐만 아니라 거친 외교까지 섭렵한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에 그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한미간 미래의 번영을 담보하고자 했던 한미상호방위조약은 70여 년의 시대를 관통하여 누란의 위기 속에서도 살아 숨 쉬고 있으며 국가 간의 날카로움을 더하고 이익을 더하는 국익외교를 너머 위기와 기회가 교차했던 70년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서로 윈윈 하고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는 동반자이자 파트너로서 여전히 2025년 지금 이 순간에도 시퍼렇게 살아 숨 쉬고 있으며 가치에 가치를 더하는 가치외교의 희귀한 사례로서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