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8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은 트럼프답게 한 편의 리얼리티 쇼를 보는 듯했고 통역을 건너뛰고 밴스 부통령과 말싸움을 벌이다가 급기야 트럼프와도 정상회담이라는 장이 무색하게 설전을 벌이는 젤렌스키의 허망한 메아리가 70여 년 전 영어와 외교로 준비되고 단련된 이승만 대통령의 차원이 다른 외교역량은 지금 젤렌스키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 다가온다.
반복되는 역사의 평행이론은 기시감과 데쟈뷔가 뒤섞이는 장면과 배경을 무심히 만들어 내지만 어떻게 70여 년의 시차를 두고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교착점이 동쪽의 한반도에서 서쪽의 크림반도가 위치한 우크라이나로 옮겨갔을 뿐 강대국들 간의 그레이트 게임의 반상 위에 놓인 약소국의 참혹한 현실 앞에 무력감이 밀려온다.
70여 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듯 다른 듯 젤렌스키에 투영된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78세의 노구를 이끌고 아이젠하워와 자신의 진퇴는 물론 대한민국의 명운을 걸고 벌였던 건곤일척의 밀당은 그 자체로 숨이 막히는 세계패권질서의 가늠자 rear sight였으며 우남은 기꺼이 가늠쇠 front sight로서 아이크와 처칠이라고 하는 해양세력의 양대 패권국 수장의 뒤통수를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신의 한 수를 동원하여 세차게 후려쳤다.
아이젠하워는 회고록에서 임기 8년 동안 유일하게 자다가 깬 사건이라고 언급했고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아침 면도 중에 보고를 받고 화들짝 놀라 얼굴을 베었다. 처칠은 매우 분노하여 이승만이건 뭐건 다 박살내고 한국에 신정부를 세우자고 아이젠하워에 요청했을 정도였다. 에버레디 플랜의 발동은 시간문제였다. 미국 대통령이 처칠 같은 인물이었다면 바로 실행되었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은 신사로 유명했던 아이젠하워였고 아이젠하워는 일단 참은 뒤 국무부 차관보 월터 S. 로버트슨(Walter S. Robertson)을 한국에 급파했다.
이 처럼 전쟁은 단순히 적 하고만 치르는 것이 아니다. 피아간에 중첩되고 배척되는 이해관계에 따라 오월동주吳越同舟, 적과의 동침도 비일비재하고 아군끼리도 얼마든지 보이지 않는 건곤일척의 전쟁이 전선을 가리지 않고 진행된다. 특히 치열한 전쟁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면 전쟁 당사국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반상의 종국으로 접어들며 이 마무리에서 한 수 한 수는 포탄이 빗발치는 열전의 치열함과는 또 다른 국제관계의 냉혹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술적인 신의 한 수, 기술적이고 기계적인 마무리 그리고 뼈아픈 패착敗着이 엇갈리고 살얼음 판의 무심함이 교차되는 그레이트 게임이다.
우남에 대한 여러 가지 악마적 음해 가운데 하나가 "이승만은 미국의 꼭두각시였다"는 것인데 에버레디 작전 Operation Ever-ready은 이를 반박하는 증거 중 하나이다. 우남이 정말 미국의 꼭두각시나 허수아비였다면 우남이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미국이 그를 제거할 계획까지 세웠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남은 기본적으로 지미知美주의자요 대한민국을 위해 용미用美하는 철저한 애국애족주의자였다.
우남은 무엇보다도 그의 박사 논문 테마, '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과 같이 강대국과의 국제관계에 놓인 약소국의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자나 깨나 생각하여 강대국을 요리할 줄 알면서 신이 내린 사람처럼 예술적으로 아이크와 처칠을 다루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북한군의 남침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선을 철저히 정치적으로 계산하여, 정확하게 미국이 자신과 대한민국을 밀어내기 직전 지점까지만 미국과 문제를 일으켰을 따름이었다.
1908년 1월생은 전쟁 중에도 우남이 발췌개헌으로 실시한 국민직선제를 통해 2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절차적 과는 있었다 하더라도 백두간척에 선 약소국 대통령으로서 민주적 대표성을 확고히 하여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들이 대한민국의 국익을 함부로 훼손하지 못하게 한 것은 물론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미국 눈앞의 국익에는 아무런 도움도 없을 것 같은 안보결사 공동체를 기어이 밀어붙여 한미 양국 간 누대累代를 걸친 번영의 초석을 쌓은 공은 우남만이 할 수 있었던 예술적 외교역량임을 알아차리고 깊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화들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