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사는 우리는 자연에서 나와 세상을 살기 때문에 늘 햇깔린다. 즉 해가 깔려 있기 때문에 대명천지 밝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실재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 어둠의 그림자를 부여잡고 평생을 씨름하다가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가장 큰 의문이 든다. 실재하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빛과 그림자는 밤과 낮, 밝음과 어둠, 생과 사처럼 보였다 보이지 않았다를 반복한다. 빛이 밝으면 보이고 그림자가 짙으면 보이지 않는 이치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나올 때는 빛에 주목하고 세상을 살아갈 때는 평생 그림자를 따라간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를 느껴본 사람들은 현존 세대에서는 극소수이다. 이제 트럼프의 공언대로 러우전쟁이 끝나면 전장의 참화를 온몸으로 겪은 우크라이나 국민들만이 적나라하게 느낄 것이다.
전쟁은 법보다 주먹이다. 주먹도 그냥 주먹이 아니고 세계패권질서를 결정짓는 건곤일척의 싸움에서 원자폭탄 빼고는 다 쓴 전쟁에서 결국 비긴 남북과 미중은 누가 총력전을 하였고 누가 제한전을 한 것과는 무관하게 다시 힘에서 법으로 돌아와 자연의 빛보다는 세상의 그림자를 쫓아가면서 존재하지도 실재하지도 않는 그림자를 따라가다 보면 빛에 도달하게 되리라는 오래된 세상의 원리를 부여잡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부질없는 희망고문을 반복하게 되는 법이다.
서로의 힘과 정치적 의도를 수백만 명 인명의 희생과 천문학적 재산의 손실을 겪고 나서 상처뿐인 상태로 마주 앉은 휴전회담에서 쌍방은 3년간 전쟁의 악몽에 진저리가 나서 전쟁을 멈추자는 지점까지는 이견이 없었으나 마주 앉아 막상 어떻게 끝내지라고 하는 핵심의제 앞에서는 그저 막막하여 쌍방은 2년을 변죽만 울리다가 결국 우선 정전협정 Armistice Agreement이라는 미봉책으로 3년 전쟁을 황급히 덮고 모든 문제를 1954년 제네바로 미루었다.
1954년 제네바회담은 1954년 4월 26일부터 6월 15일까지 유엔군 측에서 한국과 참전 15개국(참전 16개국 중 남아공은 제외), 공산군 측에서 북한 및 소련·중국 등 총 19개국 외상들이 스위스 제네바 전 국제연맹회관에 모여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방안을 논의한 국제정치회담이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한국전쟁 정전협정 제4조 60항, 1953년 8월 28일 유엔총회 결의에 근거하여 개최되었다. 정전협정 정치회담의 두 가지 의제였던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통일방안과 외국군 철수 문제가 논의되었다.
거악의 질서가 지배하는 일제의 심장부 제국대학에서 일본학생들 보다는 뛰어나야 한다는 일념하에 모든 면에서 초인적 자강의 노력을 쏟았던 1908년 1월생은 그것이 독립전쟁에 뛰어들어 순국한 1908년 6월생 매헌의 희생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목숨 걸고 공부했던 1908년 1월생의 눈에 비친 휴전회담과 이어진 정전협정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마치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숙제를 미루는 졸속적으로 체결된 법조문과 다름없이 보였고 이에 더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정치회담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유엔군 측의 동상이몽과 공산권의 선전선동이 교묘히 어우러져 오히려 한반도 분단을 공고히 하고 평화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확인한 회담이었다. 결국 한국문제는 유엔이라는 국제기구 안에서 협의한다는 모호한 결론만 남기고 헤어졌다.
이처럼 어설픈 철부지가 계산하지 못한 힘으로 시작한 한국전쟁이라는 힘 겨루기는 정전협정이라는 졸속적인 법으로 무마하려고 하였지만 그 무마책은 오히려 분단을 법적이나 정치적으로 공고히 하고 1954 제네바 회담을 거쳐 유엔으로 돌려 막기를 거듭하는 국제관계 속에서 1954년의 전후 질서는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무법과 떼법이 판치는 새로운 한반도 백년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함께 몰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