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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 백년전쟁 83, 스릴러 1983

by 윤해

세포는 수축과 이완을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생체 활동을 통해 생존한다. 혈액을 말단 세포까지 보내기 위해서는 심장 세포를 쉬지 않고 수축하고 이완하면서 박동해야만 신선한 혈액이 세포로 공급되면서 우리는 활기차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수축과 이완을 담당하는 자율신경, 즉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조화롭게 작동하지 않는 실조와 항진이 오래 지속되면 생체는 탈이 나고 병이 되어 막혀서 죽는 것이다.

지구가 밤과 낮을 주기로 하루를 만들어 내듯이 지각을 사는 인간도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을 조화롭게 조절하여 해가 뜨면 활동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긴장과 공포 서스펜션 그리고 스릴은 모두 자율신경을 자극한다. 이 시기 발표된 스릴러 Thriller는 마이클 잭슨을 팝 음악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했고 , 1980년 디스코 몰락 후인 1981~1982년의 과도기 이후로 가장 큰 음악적 격변기를 이끈 동시에 스릴러의 가사처럼 세상 사람들을 긴장과 공포로 잠들지 못하게 한 마이클 잭슨의 불후의 명곡이었다.

희망의 80년대 만 바라보고 달려온 대한민국 국민들 앞에 펼쳐진 유신보다 더한 군사독재의 5 공화국은 민주화의 뿌리까지 공포와 긴장으로 압살 시키면서 새로운 질서를 세워나갔다. 그 질서가 비록 국민이 원했던 질서는 아니었고, 80년대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지만 절망에서 좌절하지 않고 그때를 산 대한민국 국민들은 곧바로 86년 아시안 게임 유치 그리고 88년 올림픽 대회를 바라보며 희망의 90년대를 다시 한번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레이건의 대소강경책으로 인해 미소 냉전체제가 긴장과 스릴로 흐르는 OK 목장의 마지막 결투로 나아가면서 냉전의 최전선 남북간에도 묘한 긴장감이 계속되면서 소련에 의한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과 북한에 의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가 발생하자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대소 보복을 천명함으로써 제3차 세계 대전의 문턱까지 가기도 했다. 또 한 번 세계를 멸망시킬 우발적 핵전쟁의 가능성에 세계는 긴장했다.

이처럼 소련이 도발한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이나 북한이 도발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의 최대 피해자이며 희생자이자 당사자이기도 한 우리 대한민국은 그때 세계패권전쟁에서 철저히 동네북이 되어 두드려 맞는 신세였으며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치를 떨던 때가 1983년이었다.

1908년 1월생은 1983년 9월 1일 사할린의 바다 위에서 탑승객 269명이 한 줌의 재로 변한 대한항공 비행기 격추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1983년 10월 9일 버마 아웅산 묘소에서 폭발사고로 생때같았던 각료와 수행원 16명이 유해로 돌아오는 충격적인 비극 앞에서 할 말을 잊었다. 6.25 전쟁의 포성은 그쳤지만 휴화산처럼 타고 있는 동서냉전의 긴장감은 서스펜션을 지나 긴장과 스릴 넘치는 공포영화가 되어 1983년 우리 앞에 순식간에 다가왔다.

긴장과 스릴이 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우리를 잠 못 들게 하였지만 1983년 6월 KBS 1 TV에서 전파를 탄 특별기획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가 방송됐다. 해방 이후 전쟁을 거치며 뿔뿔이 흩어져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가족을 찾아 나선 이산가족들의 아픔이 온 국민을 울리면서 온 국민의 부교감 신경을 건드렸다. 무명의 설운도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잃어버린 30년과 곽순옥이 부른 노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의 애절한 가사는 이산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그대로 현실임을 말해주었다. 이때만 해도 이 프로그램이 그해 11월 14일까지 이어질 줄 그 누구도 예상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방송 내내 숱한 이산가족들의 애끊는 신청이 밀려들었고 KBS는 결국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에도 방송을 이어가야 했다. 그렇게 11월 14일까지 무려 136일 동안 이어진 방송을 통해 10만 952건의 사연이 접수됐고 5만 3536명이 출연해 1만 189명이 가족을 찾아 눈물의 상봉으로 감격했다.

1905년 망국의 을사오적이 나타난 그때나 2025년 매국 배금세력들이 창궐하는 지금이나 대한민국의 처지는 역할을 교대하는 배우처럼 소수의 빌런들이 늘 천진난만한 아기돼지 이천만과 삼천만과 오천만 나아가 북녘 동포까지 팔천만을 속이는 늑대의 시커먼 손에 밀가루를 칠해 엄마의 하얀 손으로 둔갑시키는 법기술자들의 농간과 위장, 기만과 착복으로 점철되어 있는 유구한 한반도 백년전쟁의 소리 없는 포화와 연막 속에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국민들이 알고 있어도 대한민국의 경쟁력과 협상력을 갉아먹고 있는 을사오적이 을사팔적이 되고 을사 이백적이 넘어가며 120년 간이나 이어지는 을사년의 악몽에서 깨어나서 1905년의 망국에서 2025년을 깨울 수 있으련만 피와 땀 그리고 시행착오를 먹고사는 역사의 정반합과 평행이론의 경이로움에 그저 입을 다물기가 힘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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