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 우선은 나를 인정해야 하고 그다음 가장 가까이에 있는 너를 인정해야 하며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인정할 것이 뭐 없는가 하고 찾아보고 살펴보면 대체로 만나는 사람과 원만하게 이야기도 하고 풀리는 경우가 꽤 있다. 물론 여기서 말이 안 통하고 꽉 막힌 사람과 만나도 그 상황 자체마저도 인정하고 들어가야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다.
다만 나와 네가 우리가 되고 우리가 가족을 구성하고 가족이 사회를 사회가 국가를 형성하는 공동체로 가면서 점점 백가가 되어 쟁명한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하자.
공부는 이해하기 위해 한다. 무슨 이해?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공부고 몸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해야 한다. 머리로 이해한 공부를 가지고 손을 놀려 현실의 노동과 부딪혀 보면 손과 뇌의 공진화가 얼마나 지난하고 느리고 서서히 일어난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뇌정보적 기반에 의해 유지되고 발전되는 인간이 모여사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인간이 한순간이라도 생명활동을 하려면 한시도 쉬지 않고 작동하는 유전정보적 기반, 좀 더 쉽게 말하면 자율신경이라고 하는 뇌정보로서는 접근도 이해도 어려운 우주와도 같은 얼개가 마치 우주와 자연이 스스로 어찌어찌 굴러가듯이 생명을 받고 사명을 무시하며 가야 우리는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사는 우리는 늘 기본값에 등한하며 애써 무시하기까지 한다. 알아봐야 별 소용도 없고 역할도 없으며 생색낼 일도 없으므로 마치 그런 것이 없는 듯 행동하고 오로지 시각정보적 뇌정보적 현상과 결과물에 집착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것을 가져오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세상적 능력이라고 존경하고 우르러본다. 그리고 세상적 능력자에게는 한없이 몸을 낮추지만 능력이 사라지는 순간 바로 손절하며 또 다른 능력자를 찾아서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소년의 희망으로 길을 떠난다.
뇌정보적으로 만든 세상을 보면 한없이 한심하고 최선이 아닌 버금만 추구하는 악세를 사는 듯 보이지만 그러한 악세 가운데에서 피어나는 자연의 꽃들을 바라보면 너무도 의연하며 질서 정연하다.
우리도 모두 봄에 피어나는 꽃과 같이 아름답고 정연했지만 머리를 쓰고 뇌를 굴리며 너를 인정하지 않고 나만 인정해 달라고 떼쓰고 아우성치다 보니 백가쟁명처럼 모든 것이 꼬이고 이제는 인정이 뭔지도 생각나지 않는 고집불통이 되고 말았다.
보충성 원칙 principle of subsidiarity도 소국과민론小國寡民論 도 각자도생各自圖生도 모두 경세방략經世方略이라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편과 전략일 뿐 왕을 구해도 허하고 나를 바라봐도 한심하다. 손을 놀려 사는 노동하는 자들과 조직을 해서 노조를 만들어 보지만 하나같이 입으로만 손을 놀리지 몸으로 손을 놀려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을 방해하고 도로 머리로 돌아가려는 조직이니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자들이 세상을 점점 더 악세로 바꾸는데 일로 매진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을 아주 못 견뎌하면서 누가 행여 자신을 들여다볼까 전전긍긍하며 혹시라도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까 봐 두터운 가면을 쓰고 손으로는 너를 가리키며 너와 나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필생의 업으로 삼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너와 나는 99.9%가 같다. 혈관을 흐르는 피가 박동하고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하모니를 이루며 자율신경이 실조 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유전정보적이고도 기적적 삶을 살고 있는 나가 99.9%의 나이며 나머지 0.01%에 불과한 나가 뇌정보적으로 머리만 굴리고 악세를 만들며 살아가는 나라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를 알고 너를 알며 우리를 알고 인정하는 나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