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정보 세상을 사는 인간의 뇌는 개별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서 기억조작을 다반사로 하고 산다. 반성과 성찰을 하라는 말은 기억조작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고 늘 주변과의 관계에서 지대한 역할을 하는 기억이라고 하는 믿을 수 없고 수시로 셀프편집이 가능한 뇌정보를 조화롭고 균형감 있게 제자리로 가져다 놓으려는 이성이며 본능을 거스르는 지난한 몸부림이라고 표현한다면 적절할지 고민해 본다. 개인의 기억도 이 모양인데 하물며 수많은 개인이 공유하는 공동체의 기억은 그야말로 다채롭고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단은 인정하고 들어가야 공동체 안의 갖가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낸 기억을 토대로 한 관계 간의 갈등을 어느 정도 나마 이해할 수 있는 자세를 잡는 것이다.
공동체의 기억이 그래도 억지로 하나로 모아가는 때가 인류사에 늘 고통과 아픔 그리고 참절慘絕된 비극으로 공유된 전쟁의 순간이다. 인간의 생사가 순식간에 널 뛰기를 하는 전장에서 기억하는 순간에 강력하게 뇌리에 박히는 전쟁의 기억은 공동체를 일순간에 단결시키고 오직 승리만을 추구하며 공동체 구성원에게는 강렬한 기억을 선사하면서 비로소 국민들 모두를 단결시킨다. 이러한 이유로 역사상 독재자는 전쟁을 악용하여 권력을 누린다. 그러므로 전시에 강제적으로 각인되는 공동체의 공유되는 기억은 처절한 아픔으로 다가오는 기억하기 조차 싫은 비극이라고 한다면 정말 드물게 일어나는 평시에 공동체를 한마음으로 묶고 단합시키고 얼싸안게 만드는 공유하는 기억을 토대로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든 두 가지 대사건이 우리가 지금도 기억하는 88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축구였다.
한국전쟁이라는 잿더미에서 분연히 일어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내고 86 아시안게임이라는 리허설을 거쳐 2년 만에 치러졌던 88 올림픽은 대한민국이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지 불과 30여 년 만에 한강의 기적으로 일궈낸 눈부신 발전상을 세계만방에 알린 대회였으며 냉전 종식의 밑거름이 되어 세계사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동시에 한국이 북한과 벌여온 체제 경쟁에서 승리했음을 세계에 알린 우리 공동체가 순수했던 기억이 온전히 남아있던 행사가 88 올림픽이었다.
88 올림픽은 단순히 남북한의 체제경쟁에서 남한이 승리한 것을 넘어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모두 참가한 완전체 올림픽에서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바라본 번영된 대한민국의 모습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고 이 기억이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단초가 되었으며 결국 소련 마저도 해체되면서 90년대의 팍스아메리카나의 시대를 열었다. 2025년 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선거캠페인으로 재선 한 트럼프를 당선시킨 미국 국민들에게 있어 위대한 미국은 바로 88 올림픽 이후 2001년 9.11 테러 이전의 팍스아메리카나를 구가했던 미국이라는데 대체로 동의한다.
이처럼 2002년 한일월드컵은 한반도 백년전쟁의 숙적 일본과 공동개최지로 선정된 것부터가 역사적 사건이었다. 막판까지 일본과의 개최지를 둘러싼 피 말리는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유치전이 한일 공동개최로 결정된 것 자체가 기적적이었으며 대회명칭과 결승전 경기를 두고 한일 간의 줄달리기를 한 끝에 대회명은 한일월드컵으로 한국이 앞에 오고 결승전은 도쿄로 합의하여 결정되었다. 그 전해 9.11 테러로 공격받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어수선했던 세계는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대회를 기점으로 다시 한번 세계인들을 대한민국으로 불러 모아 단합하는 축제의 월드컵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망국과 독립, 건국과 전쟁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신생 대한민국의 저력은 백년전쟁의 지옥 끝까지 온 국민들을 용광로 속으로 용해하여 퀜칭Quenching과 어닐링 Annealing을 반복하여 담금질하고 벼르고 벼른 나라답게 88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세계 4위에 입상했고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결과 IMF 외환위기라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한반도 백년전쟁의 만난萬難과 파고波高를 의연하게 헤쳐온 대한민국에게 있어 국제패권 금융질서의 구제금융은 패권국이 행한 양털 깎이였으나 저력의 대한민국은 터럭은 내어줄 수 있었으나 웬만해서는 대한민국의 거침없는 전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패권국에게 깊이 인식시켰고 세계패권질서라는 주도권을 잡는 키가 역설적이게도 패권국이 아닌 레브넌트(죽음에서 살아온 자)들이 바통을 이어가며 만든 대한민국에 들려 있다는 모골이 송연하고 간담이 서늘한 느낌이 현실로 바뀌는 역동적인 단합과 기적의 장이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였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두가 붉은 악마가 되어 한 마음으로 단합하고 있었고 대항해 시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세계를 경영했던 해양세력의 후예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팀 코리아,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은 월드컵 4강이라는 그야말로 월드컵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적의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었다.
2025년 대한민국은 MAGA를 앞세운 패권국 미국과 이에 도전하는 중국이 벌이는 미중 패권전쟁의 한가운데 서있다. 온갖 공작과 선거, 탈법과 권력이 교체되는 사이버전쟁이 초한전의 모습으로 대한민국을 감싸고 있지만 정작 저력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갈가리 찢기고 분열되어 한 줌의 권력과 배금주의에 경도된 120년 전 을사오적의 재림을 망연자실하게 목도하고 있으며, 을사오적의 숫자가 120년 동안 꾸준히 복제되고 증식되어 이제는 그 도적의 숫자를 헤아리기 조차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역사는 정반합의 원리로 집요하게 재현된다.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이라는 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대륙세력과 영국과 미국이라는 해양세력의 주구, 일본과의 전쟁터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은 팩트이다. 단합하지 않고 분열되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전쟁터가 된 것도 모자라 전리품으로서 망국의 고통까지 덤으로 받고 망국된 식민지 청년들의 자강과 순국으로 일어선 대한민국에게 있어 2025년은 위기와 기회가 함께 다가오고 있다. 패권국 미국의 MAGA의 성패成敗가 대한민국이 어게인 2002를 통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단합의 결과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나아가 세계패권질서의 키를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만 모른다는 아이러니가 안타까움을 넘어 그저 경이롭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