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자정리 거자필반처럼 한 생을 살고 지구를 유영하고 우주를 여행하는 우리를 잘 표현하는 말도 드물 것이다. 삶의 여정도 생과 사를 넘나드는 생명으로서 우리는 인연을 가벼이 여겨서도 안되지만 그 인연이 악연의 고리가 되어 질기게 따라다니게 해서도 안된다. 우리가 인간이 되어 공간을 살고 있지만 생명에게 있어 보다 무거운 주제는 시간이다. 시간이 비껴가거나 찰나와 억겁에 따라 우리의 생사관은 매우 달라진다.
새로운 21세기와 제3천년기가 2001년 1월 1일 시작되었으나 세계패권질서는 소련이 해체되고 미국 독주로 나아간 지도 어언 10년을 넘어서고 있었다. 권불십년이라 했던가? 자연이라는 억겁의 시간에 비교하면 세상 속의 10년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인간이 만든 수학적 정의와 가정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원리는 10년의 시간도 못 기다리고 전쟁의 세기, 20세기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시작했듯이 21세기와 제3천년기의 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을 평화가 아닌 전쟁으로 출발하고 있었다.
오전 9시 59분경, 붕괴되고 있는 제2세계무역센터와 오전 10시 28분경, 붕괴되고 있는 제1세계무역센터 "오늘 수많은 생명의 불이 꺼졌습니다." 2001년 9월 11일 ABC 뉴스 생중계 당시의 긴박한 멘트가 전 세계인들에게 실황중계되는 가운데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이끄는 무장 조직 알카에다의 동시다발적 항공기 하이재킹과 자폭 테러로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받았고 무너졌다.
이 사고로 아메리칸 항공 11편과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에 타고 있던 147명, 붕괴 당시 1 WTC에 있던 1,462명, 2 WTC에 있던 630명, 뉴욕시 소방관, 경찰관, 항만청 경찰, 의료진, 자원봉사자 421명, 주변에 있다가 파편에 맞아 숨진 18명, 붕괴 당시 위치가 확인되지 않은 71명 등 무려 2,749명이 숨졌다. 미국에 주재하고 있던 한인도 28명이나 숨졌다. 1991년 냉전이 끝난 뒤 10여 년간 세계 제1의 초강대국으로 등극한 미국이었지만,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다시 세계 분쟁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테러가 발생하고 2개월 뒤, 미국은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던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세계 상황 속에서 헌딩턴 교수가 주장한 '문명 충돌론'에 지대한 관심이 쏟아졌으며, 이에 에드워드 사이드나 하랄트 뮐러 같은 학자들이 오리엔탈리즘이나 문명공존론 등을 내세우며 반박하기도 했다. 새로운 세기를 맞아 세계는 요동쳤으며 세계인들은 또 다른 전쟁이자 한 뿌리에서 나온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회자정리와 거자필반의 질긴 악연 앞에 숨죽여야 했다.
2001년 1월 1일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정식 취임했다. 중국 공안당국은 베이징 천안문에서 새해맞이 시위를 벌인 파룬궁 수련자들을 강제 진압하여 7백여 명을 체포했다. 1월 6일 한국은행은 IMF로부터 차입한 대기성 차관 58억 달러를 8월 말까지 완전 상환키로 정부와 합의하였다. 속초와 금강산을 3시간 30분 만에 운항하는 쾌속 관광선 '설봉호'가 속초항에서 취항식을 가졌다.1월 7일 이날 대관령의 적설량이 87.7cm를 기록했다.(기상관측 역사상 최고치) 2월 27일 김대중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4월 17일 마라토너 이봉주가 제105회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했다.
8월 23일 재경부가 IMF 구제금융 195억 달러 중 최종 잔액 1억 4천만 달러를 상환하면서 IMF 관리 체제가 종료되었다. 9월 17일 한국은행이 국내 외환보유액을 발표한 결과 15일 기준으로 1천억 달러가 초과되었다. 10월 19일 김대중-부시 간 한미정상회담이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김대중-장쩌민-푸틴 간 회담이 동일 지역에서 개최되었다. 10월 20일 김대중 대통령은 중국 상하이에서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었다. 11월 10일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 미 대통령과 오찬에서 대테러 문제 및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 의견교환했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문을 열었다. 북한 측은 6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합의사항 이행 전제조건으로 남측의 비상경계조치 해제를 요구했다. 중국이 WTO에 정식 가입하였다. 12월 1일 2002 한일월드컵 본선 조추첨식이 부산 BEXCO에서 개최되었다. 이때 한국은 D조, 일본은 H조에 각각 배정되었다. 12월 11일 아프간 탈레반 정권과 알카에다가 토라보라 산악지역에서 항복을 선언하였다.
20세기의 전쟁이 비록 참혹하고 격렬했어도 선전포고를 통해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의사를 통보하고 전쟁을 시작했던 마지막 세기의 전쟁이었는지도 모른다. 은밀한 닌자처럼 민간인들이 탄 민항기를 납치하여 조종사를 제압하고 전장이 아닌 도심 한복판에 근무하고 있는 민간인을 향해 돌진하여 무려 3000명의 가까운 민간인을 학살한 테러범죄는 전쟁범죄에 차마 넣기도 어려울 정도로 간악하고 비겁하며 반인륜적이고 극악무도한 범죄일 뿐이다. 그들이 아무리 지하드라고 소리친들 거기에 공감할 인류는 거의 없을 것이다. 9.11 테러는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1년 그 당시는 21세기와 제3천년기가 시작되던 인류사의 대 전환점이 되기에 충분한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오사마 빈 라덴이 주도하고 알카에다가 실행한 소아적이고 광신적 테러로 인해 시작부터 암운이 드리우고 21세기와 제3천년기 역시 백년전쟁 아니 천년전쟁으로부터 인류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우리 문명사에 묵직하게 던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