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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백년 전쟁 105, 을사조약 백년 2005

by 윤해


혼군 고종과 을사오적이 나라를 들어 일본에 넘긴 지 백 년이 된 해가 2005년이었다. 또한 이해는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60년이 되었고, 다시 한국과 일본이 자유진영의 일원으로서 수교한 지 40년이 되었다.

135억 년 우주의 시간, 46억 년 지구의 시간 그리고 백 년도 안 되는 인간의 시간이 비록 다 같은 시간일지라도 억겁과 찰나라고 하는 시간의 무게는 엄연히 다르다. 백 년을 살기 어려운 우리는 늘 바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동료들도 해가 갈수록 홀연히 옆을 보면 하나둘씩 동년배가 사라지는 때가 순식간에 다가오기 시작한다. 자연도 무자비 하지만 시간도 무자비하게 흐른다. 길흉화복도 오욕칠정도 끓어오르는 한 순간의 거품과도 같다는 사실은 치열하게 주어진 백 년에 삼매 할 때는 아무도 모른다. 지체된 정의가 정의가 아니듯이 지체된 행복도 과거의 불행을 덮고 넘어가지 못한다는 것이 세상만사의 공통된 진리가 아닐까?

대한민국은 망국의 그날 이후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깨어났다. 근대화를 향한 자력갱신의 한 발을 띄기까지 수많은 나날들을 번민하고 주저했지만 1895년 나라를 팔아먹은 군주와 신하들의 허튼짓을 보고 나서야 우리 이천만 신민들은 국민으로 재탄생되었다.

이루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선각자들이 깨어나 국권을 되찾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짜내고 누구는 식민지 조선에 남아 자강 했고 누구는 해외로 망명하여 풍찬노숙하면서 독립을 위해 순국도 마다하지 않았고, 마침내 엉킨 피의 자취로 광복되었으나 분단이라는 패권질서는 너무나 가혹하게 한반도의 허리를 잘랐다.

수백만의 전몰장병과 국민들의 희생도 무색하게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라는 냉전질서는 155마일 휴전선을 그은 체 냉전의 최전방으로서 20세기 그 어느 국가도 겪어보지 못한 병영국가가 되어 남북한은 치열한 체제경쟁을 하였고 패권질서는 식민지 청년출신의 대통령에 의해 산업화를 성공시킨데 힘입어 자유진영의 승리로 끝나고 팍스 아메리카나의 일극체제로 달리면서 치열했던 한반도 백년전쟁의 전황이 분명해진 것도 이즈음 2005년이었다.

이처럼 백 년을 하루같이 달려온 대한민국은 망국 후 백 년 만에 그 어떤 국가도 달성하지 못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었으나 치열하게 살아온 백 년의 관성대로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다이내믹 코리아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좌고우면 하지 않고 좌충우돌하면서 후진기어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쭉 직진하고 있었다.

2005년 한일 수교 40년 슬로건인 '한-일 우정의 해'란 말이 무색하게 다케시마의 날 조례제정으로 대일관계가 냉각되고 대한민국에서 잇따른 반일감정이 들끓었던 해이다. 한중 외교관계도 중국의 지나친 동북공정과 중국발 황사로 인해 악화일로에 있었고 중국과 일본도 중국인들의 센카쿠 열도 분쟁과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정치경제, 사회적으론 노무현 대연정 파동, 안기부 X파일 사건, 맥아더 동상 철거파동,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 WTO 쌀 관세화 협상 비준문제 등으로 시끄러웠다. 과학계에선 이른바 황우석 줄기세포 신드롬이 전국을 들끓게 했다. 2년간의 공사 끝에 청계천이 서울시민의 품으로 돌아왔으며, 정부는 집값 폭등 등을 막기 위해 8월 31일 '8.31 부동산대책'을 발표해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했다. 또 여성계에선 호주제가 폐지된 해로 크게 부각했으며, 11월에는 APEC 정상회의가 부산에서 개최되었고, 금융계에서는 한국증권거래소, 코스닥증권시장, 코스닥위원회, 한국선물거래소가 한국증권선물거래소로 통합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현금영수증 제도가 전국적으로 실시되었고, 이 해부터 쓰레기를 땅에 매립하는 행위가 전면 금지되었다. 2005년 6월에는 매우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했는데 바로 530GP 사건으로, 경기 연천 육군 28사단 최전방 GP에 복무하던 김동민 일병이 내무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져 부대원 8명을 사망케 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유튜브가 이해 2월 중순에 최초로 등장했다. 2005년까지는 해외에서조차 유튜브의 영향력이 미약했다. 유튜브는 2010년대부터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다양한 콘텐츠 및 유튜버가 등장하면서 2015년을 전후하여 한국에 대한 유튜브의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막강해지기 시작했다.

2005년은 망국 후 백 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한 해이기도 했지만, 국민소득 2만 불을 달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선 한 해였다. 1905년 을사년의 망국 이후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자유진영에 편입된 대한민국은 한반도 백년전쟁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하고 일어나 굴기하였으나 남북한 분단이라는 패권질서로 인해 독재왕조 체제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북녘동포들이 옴짝달싹 못하고 퇴행하는 병영국가의 인민으로 잡혀있는 기형적이고 구조적 비극을 그저 바라다보는 무력감을 느끼며 한 민족이라는 동질성 역시 퇴색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백 년의 적 일본이 백 년 전에 시작한 한반도 백년전쟁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달려온 백 년의 세월 동안 피아가 바뀌고 주적이 변하는 이합집산을 겪으면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판도가 바뀌고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라는 패권질서가 요동치면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피를 나눈 동족 외면한 체
백 년의 숙적 일본과 우정을 나누어야 하는 기막힌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한 한 해가 2005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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