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년 동안 면면이 이어오는 생명으로서의 나와 불과 몇 만 년에 불과한 세상 속의 인간으로서의 나는 엄연히 다르다. 착각과 상상을 마음대로 하는 뇌정보가 날아다니는 일종의 가상세계인 세상 속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아예 하지 않고 허상의 현실에서 하루하루 누군가가 심어준 고정관념에 따라 시키는 대로 보이는 길을 따라 세상에 삼매 하면서 자기를 잊고 세상 만을 바라보며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소리치고 한 생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세상 속의 나일뿐만 아니라 그것보다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장구한 세월을 살고 있는 생명 속의 나가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현대문명의 삶이라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사는 것이 여러모로 우리 삶의 실상을 깨닫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즉 뇌정보 중심의 삶이 세상을 잘 살기 위한 방편이라면 유전정보적 삶은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생사를 좌우하는 핵심적이고도 필수적인 실상의 세계이다.
방기곡경旁岐曲逕, 근방의 갈림길과 굽은 길이라는 의미이다. 나는 인생을 걸어가면서 수많은 갈림길과 만난다. 갈림길에서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은 분명코 존재하지만 주변과 근방에 널려있는 갈림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라 구불구불 돌아가야 할 길 뿐이라면 우리는 길을 잃은 것은 아닐까 한 번쯤 의심해 보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신종플루는 2009년 3월 하순 미국에서 시작되어서 이듬해 초까지 유행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서 스페인 독감과 같은 인플루엔자 A/H1N1이었다. 홍콩 독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 같이 세계보건기구에서 범유행전염병으로 선언한 질병 세 가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WHO에서 지정한 범유행전염병(펜데믹) 선언은 2009년 6월 11일 이뤄졌다. 세계보건기구는 2009년 6월 16일을 기준으로 전 세계 76개국에서 3만 5928명이 발병하였으며 163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집계했다. 11월 수치로는 미국의 사망자가 3433명으로 1위를 기록했고 이후 브라질, 멕시코가 이었다. 전체 감염자 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와 WHO에서는 전체 감염자 수를 세지 않기 시작했으며 2010년 4월에 WHO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소 사망자 17,583명이었다. 2012년 6월 미국 CDC 발표에서는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는 거의 40만 명 정도라고 발표했다. WHO 발표에서는 신종플루가 발생했을 때 실험실 등을 통해 신종플루로 확인된 사망자들만을 대상으로 사망자를 집계해서 사망자 수가 적은 것이다.
지구 생명체 중에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는 우리 인류가 감기 바이러스의 먹잇감이 된다는 사실에서 지구 생명체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포식과 피식의 영역이 눈에 보이는 거시계의 운동장뿐만 아니라 우리가 볼 수 없는 미시계라는 운동장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음을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뇌정보 세상과 유전정보적 시간까지 아우르면서 인문을 넘어 자연과도 소통하는 조화로운 삶에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2009년의 세계패권국 미국은 44대 대통령으로서 사상 처음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취임하였다. 흑인 대통령이라는 상징성과 핵무기 감축 등의 공로로 2009년 노벨평화상을 수여받기도 했다. 2009년은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 2명이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박연차 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직접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1달 뒤인 2009년 5월 23일 사망했다. 2009년 8월 18일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사망하였다. 장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 이후 30년 만에 국장으로 치러졌으며, 국립서울현충원 대통령 묘역에 안장되었다. 2월 16일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3월 3일 원화 미국 달러당 환율이 한때 달러 당 1590원까지 올랐으나 정부의 개입으로 겨우 하락했다. 코스피는 1000선이 붕괴되었다. 5월 21일 대한민국 대법원이 사상 처음으로 연명치료 중단('존엄사', 혹은 소극적 '안락사')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6월 23일 대한민국에서 신사임당이 그려진 오만 원권 지폐 발행이 시작되었고, 1973년 이후 대한민국의 최고액권 화폐 단위가 만 원권에서 오만 원권으로 바뀌는 변화가 탄생했다. 6월 25일 마이클 잭슨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8월 1일 광화문광장이 시민에게 개방되어 현재의 서울 모습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9월 26일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11월 28일 iPhone 3G/3GS가 대한민국에서 정식 수입되면서 스마트폰과 디지털 세상으로 진입했던 시기가 2009년이었다.
총, 균, 쇠로 상징되는 문명의 흥망과 명멸의 원인을 찾아 들어가다 보면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기록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문명과 역사라고 하는 세상의 원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원인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균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현대의 패권질서는 총도 아니고 쇠도 아닌 균이 만든 패권질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럼버스 선단이 신대륙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은 그들이 가지고 온 총과 쇠로 무장한 냉병기가 아니라 그들이 구대륙에서 묻혀온 천연두 균이라는 것은 그 당시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신대륙 원주민의 거의 90%를 몰살시킨 천연두를 비롯한 구대륙 세균들이 퍼져나가서 신대륙을 해양세력들이 손에 넣지 못했다면 팍스 브리타니카도 팍스 아메리카나도 결코 팍스 시니카를 대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세균과 바이러스가 만들어가는 세상의 원리는 자연의 섭리와 연결되어 세상을 바꾸어 나간다. 2009년은 신종플루라고 하는 펜데믹이 세상을 덮치면서 우리 인류문명의 흥망성쇠가 우리의 뇌와 공진화한 우리의 손이 아니라 우리 손안에 나아가 우리 몸속에서 수억 년간 숨죽이며 공생하고 있는, 우리 몸의 90%를 이미 점유하고 있는 세균과 바이러스를 포함하는 미생물에 의해 좌우된다는 10% 휴먼의 진실을 꺠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연의 섭리에 눈 뜨고 포식과 피식이 함께 공생하고 있는 위대한 자연의 섭리 앞에 조금은 겸손해지지 않을까? 신종플루라는 펜데믹 앞에서 비로소 짐작이라도 한 번 해본 2009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