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윤 해 록] 백년전쟁108, 호질기의護疾忌醫 2008

by 윤해

탈도 많고 병도 깊다라는 말처럼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다사다난한 사건 앞에서 어떻게 하면 중심을 잡고 살 수 있는가가 생존과 나아가 행복의 열쇠이다. 이처럼 삶이란 죽기 전까지 마주하는 네버엔딩 스토리이며 이 스토리에 서사를 입히고 그에 따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며 개인의 자유이다. 이 각자라고 하는 개별 국민들이 병과 탈을 구분하고 그때그때 적확한 문제해결의 해법을 내어놓는다면 그 국가는 누란의 위기 속에서도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고 번영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은 역사가 웅변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나 국민이나 위기를 만나면 기회로 인식하기는커녕 일단 몸은 얼어붙고 정신은 패닉으로 접어들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악수를 두고 반상을 혼란 속으로 몰아가는 것은 너무도 흔하디 흔한 일이다.


호질기의 護疾忌醫라는 말은 병을 감추고 의사에게 보이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와 상반된 말로써 자병자치自病自治라는 말도 존재한다.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는 질환과 병에 대한 오래된 공포는 호질기의護疾忌醫의 두려움도 자병자치自病自治의 오만함도 선택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내가 걸린 것이 깊은 병인지 흔한 탈인지도 구별하지 못하고 교각살우矯角殺牛하면서 사망의 길로 달려가는 것이다.


2008년은 참여정부가 물러나고 이명박 정부 첫 집권기로 10년 만에 여야 정권이 바뀌는 해였다.대외적으로는 호황의 2000년대와 불황의 2010년대를 가르는 기점이 되는 사건들이 터졌다. 미국 경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악화되고 일파만파로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또한, 원유값이 사상 최고가(150달러)를 찍기도 했던 해였다. 1398년부터 서울특별시 중심을 지키던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전소되어 충격을 안기기도 했고, 숭례문은 이후 복원 공사를 거쳐 2013년 새롭게 완공되었다. 남북관계는 이 해 7월, 금강산 관광 중 북한초병에게 사살된 박왕자 씨 피살 사건 이후 관광이 영구 중단되면서 급속도로 경색되기 시작했다. 11월 29일에는 개성 관광도 중단되어 남북관계는 2006년 북한 1차 핵실험 이후 약 2년 만에 다시 긴장상태로 접어들게 되었다.


87 체제 이후 평화적인 정권교체는 해가 지나갈수록 여야의 첨예한 갈등구조를 낳았고 국익을 위한 대승적 양보는 자취를 감추었으며 점점 더 근시안적이고 소아적 패거리 의식으로 무장한 위정자들이 힘을 쓰는 행패스러운 망동을 주저하지 않았고 겉으로는 민의를 수용한다고 하지만 뒤로는 대선불복을 위해 교묘히 지지자들을 부추기고 새로 출범하는 정부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것이 공식화된 수순인 듯 이러한 매국적 망동을 서슴없이 하는 빌런들을 꾸짖고 비판하고 막아야 할 언론을 비롯한 사회의 공기들이 배금주의와 줄 서기 그리고 이념에 경도되어 황색저널리즘화 되고 양비론에 빠져 국가가 나아갈 바를 밝혀줄 사람들을 교묘히 매장하고 오로지 자신의 사익을 보장할 사람들에게 줄을 대는 무리정치는 단단하게 증식되고 있었다.


실용정부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의 첫출발도 순탄치 못했다. 정권 초기에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파동으로 대규모 촛불시위가 열렸으며, 시위 차단용 컨테이너와 방패/물대포 진압, 부상자들이 속출하며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었다. 이를 계기로 축산물에 원산지 표시가 의무화되는 계기가 된다.


어수선한 국제패권 질서 속에서 Decade from Hell이라는 오명이 따라붙은 부시대통령 재임 8년간은 9.11 테러에 이은 테러와의 전쟁 그리고 임기말 미국발 금융위기까지 터지면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쇠퇴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했다. 실상과 가상을 넘나드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평화라고 하는 허상은 전쟁이라고 하는 실상 앞에 가려지고 왜곡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에는 모두가 역부족이었다. 2008년 10월 18일에는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이태식 주미 대사 등 7개 신규가입국 대사들이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비롯한 7개국을 미국의 비자면제프로그램 신규 가입국으로 공식 발표하기도 했으며 같은 달 말에는 한국에게 미국 통화스와프를 체결하였으며, 2008년 10월 8일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대한민국 18대 국회에 제출되면서 한미 관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대선불복의 시발점이 된 촛불과 광우병 파동은 일견 연결고리를 찾기 힘들다. 그러나 촛불을 가장한 횃불의 파괴력을 숨긴 대선불복세력, 국가 간 자유무역 협정에 쇄국의 고춧가루를 제대로 뿌리며 허위와 광기를 숨긴 대선불복세력들은 실상에 허상의 탈을 뒤집어 씌우고 그들이 목적하는 바를 향해 맹목적으로 국민을 선전선동하는 매국적 선례를 2008년에 남겼다. 매국자들이 애국자의 탈을 뒤집어쓰고 한바탕 탈춤을 추는 동안 대한민국의 병은 깊어질 대로 깊어져서 이제는 탈을 쓰고 있는 것이 정상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탈을 쓰고 있는 동안 병은 깊어졌지만 병을 감추고 의사에게 보이지 않고 마치 108 번뇌로 혼란스러운 108가지 자병자치自病自治의 방법으로 갈갈이 분열된 모습이 지금의 우리라고 한다면 2008년의 호질기의護疾忌醫가 아쉬움을 더하여 2025년, 지금의 분열과 혼란의 단초이며 시작점이 아닌가 탈을 벗기고 깊이 의심해 보면서 국가를 도탄에 빠트릴 교각살우矯角殺牛만은 그저 막고 싶을 따름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윤 해 록] 백년전쟁 107, 무안務安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