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그에 따라 시종여일하고 시종일관 하라는 세상의 원리는 직선적 사고를 하면서 뇌정보 우위의 삶을 살아가고 대를 이어가며 생존하는 유한한 생명체로써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서 믿어 의심치 못할 운명이자 숙명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운명과 숙명을 절감한 세상 속의 인간으로서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 심지어 인식체계마저 수학적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나누고 잘라서 이해하여야 직성이 풀리고 그 나누어진 가상을 실상이라 굳게 믿고 실상을 가상으로 바꾸고 그 가상을 우리가 이해하기 적당한 크기로 가공하면서 과학을 발전시키고 물질을 만들어 물질문명이라는 세상 속의 허상을 끊임없이 재창조하면서 여기까지 달려왔다.
일시무시하고 일종무종 하며 무시무종無始無終하기까지 한 실상의 세계에서는 곡선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 Möbius strip와 같은 연속된 위상기하학상의 특이곡면이므로 어느 한 지점을 잘라 출발점과 종착점이 있는 직선적 사고가 들어설 틈이 없으나 뇌정보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 일이 우리와 하나 되려면 우리의 인식체계 안으로 들어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하고 잘라서 나누는 수학과 과학이 필요했고 우리는 수학이 가정한 세상 속과 과학이 잘라준 한계 내에서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보이는 대로 실상을 왜곡하고 허상을 창조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번쯤 의심해 보자.
비록 우리가 자연이 보여주는 실상에 압도당하여 수학과 과학으로써 인간의 인식체계 안에 자연을 밀어 넣고 그것을 자연과학이라 부르며 자연을 알고 정복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으나 어쩌면 우리가 자연과학이라 부르는 학문마저도 말과 글로 만들어낸 문명의 일부이며 일종의 가상세계인 세상 속의 인간이 만들어낸 미미한 인간의 무늬, 즉 인문학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호모사피엔스가 지구 생명체로써 거둔 경이로운 성공도 거대한 자연에 비추어 본다면 조족지혈이며 한 줌도 안 되는 허상의 성공인지도 모른다.
펜데믹과 트윈데믹 트리플데믹 등등,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시계의 생명체가 인류를 유린하는 순간 우리가 만든 문명이라는 허상이 얼마나 사상누각이며 위태로운 것인가를 절감하고 아직도 우리는 지구의 스몰보이에 지나지 않음을 절감한다. 그렇게 우리보다 고등생명체의 존재를 희미하게라도 느낄 때쯤 한바탕 그들이 휩쓸고 지나가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인류는 또다시 실상의 기억에서 허상의 추억을 되살리고 여전히 스스로가 지구최상위 포식자임을 증명하려는 듯이 팬데믹이 물러났음을 인지하자마자 2023년 5월 7일 세계보건기구 WHO에서는 3년 4개월 만에 코로나19 비상사태 종료(엔데믹 Endemic)를 호기롭게 선언했다.
2023년 코로나19가 사실상 끝나자 다른 전염병들이 고개를 들고 유행하기 시작했다. 감기 환자들이 급증하고, 2022년 가을부터 유행을 시작한 독감이 1년 내내 창궐하면서 하반기에는 초등학생 이하에서 마이코플라즈마 폐렴도 극성을 부렸다. 2023년에 처음으로 인도가 중국의 인구를 추월하였다. 1월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 FC 후원금 의혹’ 사건의 피의자 신분으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출석했다. 2월 3일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1심에서 아들·딸 입시비리 혐의 대부분과 유재수 전 부산광역시 경제부시장 감찰을 무마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2년, 600만 원 추징의 형을 받았다. 서울특별시는 이태원 참사 광화문 추모공간을 불허했다. 2월 8일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장관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건 처음이었다.
3월 15일 ChatGPT의 새로운 버전인 GPT-4가 출시되었다. 언어 능력의 대폭 향상은 물론, 전문지식 답변 정확도 상승, 이미지까지 인식하여 답변하는 능력이 괄목하게 향상되었다. 8월 1일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대한민국 전라북도 부안군 새만금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나 부실한 준비와 방만한 운영이 더해 엄청난 논란이 발생하였고 결국 8월 6일 잼버리에서 일어난 성범죄 사건으로 인해 전북연맹 스카우트 대원 80명이 조기퇴영을 결정하였으며 이후 태풍 카눈까지 북상하면서 8일에는 참가자 전원이 조기 퇴영했다.
9월 21일 부산 서면 돌려차기 강간살인미수 사건의 가해자가 대법원에서 징역 20년이 확정되었다. 이재명 국회의원 체포동의안과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11월 8일 윤석열 대통령이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로 조희대 전 대법관을 지명했다. 11월 29일 미국의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가 10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2월 21일 한동훈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했고, 법무부장관직을 사퇴했다. 12월 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2시간 만에 진화되었다. 서울의 봄이 2023년 대한민국 박스오피스 두 번째로 천만 관객 돌파 영화에 등극했다.
펜데믹과 트윈데믹에 이어 엔데믹으로 숨 가쁘게 진입한 세계는 코로나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면서 다시금 일상을 회복하였으나, 그 일상은 지구 한 편에서는 치열하고 참혹한 전쟁의 모습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선거에서 가려진 승패를 불복하면서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고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며 국민이 위탁한 권력을 사유화하고 애국선열들이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선한 의도 will와 품위 있는 관행에 기반한 이성 reason을 가볍게 무시하면서 민주를 참칭하고 한반도 백년전쟁의 시발이 되었던 구한말 탐관오리가 재림한 듯 앞으로는 나라를 팔아먹는 망동을 서슴없이 하고 뒤로는 매관매직을 통해 자신의 검은 배를 채우기를 다반사로 하면서도 입으로는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은 꾸미는 교언영색 巧言令色이 습관화된 희대의 빌런들이 대한민국의 암세포로 잠복하고 있다가 국민들을 상대로 아첨과 아부로 솜털 같은 권력을 잡은 후 암세포가 정상세포에 침투하여 야금야금 인체를 점령하듯이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정의 요체를 파괴하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퇴행의 씨앗이 뿌려진 한 해이자, 영화 서울의 봄으로 천만관객을 동원하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을 혹세무민 하였던 엔데믹인지 네버 엔데믹인지 모를 2023년이 홀연히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