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섭리가 듣는 것이라면 세상의 원리는 보는 것이다. 듣고 보고 만지고 지지고 볶고 이리저리 뒹굴면서 한 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청각을 통해 자연의 소리를 듣고 시각을 발전시키면서 세상의 원리에 기대어 살아가는 인간의 날갯짓이 인문이요 마치 나비의 비행을 연상하듯이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자연에는 자연스럽게 생긴 산이 있고 들이 있으며 강이 있고 바다도 있다. 산에 은거해서 부족한 나를 보호하고 들에 의탁하여 배고픈 나의 배를 채우며, 강에 의존해서 바다까지 나아가는 자연 속의 사람인 내가 바다로 나아갔던 연어 떼처럼 대양을 가로질러 거침없는 한생을 살다가 산란을 위해 자기를 낳아준 모천으로 돌아오는 연어 떼들의 회귀처럼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항해를 마치고 자신이 출발했던 강둑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들을 지나고 내를 거슬러 계곡을 건너고 세상의 원리가 숨 쉬는 언덕을 지나 언덕이 동산童山이 되고 동산童山이 모산母山이 되며 모산母山이 부산父山이 되어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기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성장하면서 인생의 생로병사를 겪고 그 자신도 한 줌의 흙이 되어 세상의 원리대로 산에 묻히는 존재가 자연의 섭리 속에 살아가는 사람인 동시에 세상의 원리에 의해 사라지고 묻히는 인간인 것이다.
백두에서 지리까지 산山에서 시작되고 산山으로 마감되는 한반도를 사는 우리들에게 산山의 의미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탄생과 죽음뿐만 아니라 삶고 삶기는 삶과 같이 살아가고 사라지는 우리들의 한 생에 있어 산이라고 하는 우리가 살아왔고 살아낸 공간으로서 산은 시간과 함께 인간의 동반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따라서 의미심장한 산 앞에 서면 우리는 산을 산 그대로 보아넘기기 어려운 충동에 사로잡힌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은 아버지의 위엄처럼 우뚝 솟은 백두산 병사봉에서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을 지나 어머니의 포근한 품을 가진 지리산 운봉과 천왕봉에 이르는 1400km에 달하는 한반도의 척추와 같은 곳이다. 대간은 산줄기가 이어지는 지형이라, 지리학에서 지질을 중심으로 구분하는 산맥과 비교하면 개념이 사뭇 다르다. 대간의 간(幹)이란 한자가 '줄기 간'이므로,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는 큰 (산) 줄기라는 뜻이다.
남북 분단의 비극은 척추가 부러져 허리가 잘린 아픔과도 비견되며 백두대간은 오늘날 종주가 불가능하다. 그저 남한에서는 설악에서 지리까지, 북한은 금강에서 백두까지 분리된 백두대간을 오를 수 있을 뿐 백두대간 종주는 체제의 분단과 함께 민족적 아픔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요원한 통일만큼이나 아득한 버킷리스트로 우리 모두에게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자연은 산길을 따라 흐르고 문명은 물길을 따라 형성되지만, 자연과 문명이 분리될 수 없듯이 산수도 별개가 아니라 산이 없으면 수가 없고 수가 없으면 산도 없는 불가분의 존재로써 사람과 인간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닮은 적막한 산과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쉼 없이 소리 내며 흘러가는 세상 속의 문명도 섭리와 원리가 뒤바뀐 산수처럼 아버지와 어머니가 갈라선 백두대간의 부산父山 백두산과 모산母山지리산처럼 편부, 편모슬하의 상처를 안고 대한민국은 여기까지 달려왔다. 편부모 가정이 많은 아픔을 겪고 살아가듯이 분단된 대한민국은 남북으로 갈린 것도 모자라 동서로 좌우로 심각한 분열을 반복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25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선한 의지와 정의로운 이성이 무너진 자리에 무엇이 자리 잡을지 누구도 예단할 수는 없으나 분명한 것은 편부 편모가 합치는 대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헤쳐나가기 어려운 상황들이 줄기차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편부 편모로 살아온 날들은 한반도 백두대간의 역사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찰나에 불과한 시간을 살았다는 자각이 그나마 변침하고 있는 대한민국호의 골든타임을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자각일지 착각일지는 머지않아 밝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