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현실에서 목도하는 법의 얼굴은 여기에 같다 붙이고 저기에 걸어놓는 이현령 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물이 흘러가듯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상선약수의 덕목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좁은 계곡을 흐르면 거칠게 물살이 되어 나아가고 낭떠러지 협곡을 만나면 깊은 물 웅덩이를 파는 폭포가 되기도 하다가 내를 만들고 천을 흘러가 강에 다다를 때쯤 되어서야 물살은 도도히 흘러 유유히 바다에 다다른다.
물이 가는 모습처럼 법이 집행되는 모습도 이와 같기를 기대해 보지만 상식과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하는 법은 시대를 불문하고 양날의 검처럼 도덕과 상식을 파괴하는 도구가 되면서 정의보다는 불의의 손을 들어주며 악세를 견인하기도 한다.
법法은 이처럼 계곡을 흐르는 물처럼 거칠게도 ,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폭포처럼 폭군스럽게도, 졸졸 흐르는 내와 천같이 얌전하게도,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하게도, 모든 것을 받아주는 바다처럼 경극 배우의 변검變臉과 같이 수시로 얼굴을 바꾼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법도 우리에게 아무 짓도 할 수 없다. 그러나 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법의 심판을 받는 것에서 행위를 하지 않아도 처벌받는 악법이 양산되면서 위험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얼어버리는 우리의 오래된 본능을 깡그리 무시하기도 하는 것이 법의 진화이다.
기원전 399년 아테네의 법정에서 소크라테스는 불경죄와 청소년 유혹죄라는 허위사실로 기소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독배를 마시고 죽어갔다. 여기서 법은 기소와 선고 변론과 판결이라는 형식적 절차만 갖추었을 뿐이다. 내용상의 이현령 비현령은 차치하고서라도 허위와 날조로 가득 찬 기소내용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소크라테스를 사법적으로 제거하는 사법살인을 서슴지 않았고 테스형의 위대함은 그러한 악법도 법이다라고 일갈하면서 수많은 동료와 친구 제자들의 탈옥권유를 거절하고 자신의 철학적 소신과 법에 대한 깊은 고뇌 끝에 독배를 마시고 죽어감으로써 그는 죽어서 산 존재가 되었다.
이처럼 법은 정의의 실현이라고 하는 철학적이며 형이상학적 이상이 아니라 기득권의 수호라고 하는 수학적이며 형이하학적 현실에 불과하다. 이상과 현실이 늘 충돌하듯이 법과 정의는 공존하지 않는다.
쇼생크 탈출의 은행지점장 출신의 앤디가 아내 살인의 누명을 쓰고 악명 높은 쇼생크 교도소에 들어와 온갖 고초를 겪고 레드를 비롯한 교도소 동료들에게 첫 번째로 던진 질문이 무슨 죄로 여기에 들어왔느냐는 물음이었다. 앤디의 교도소 동료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자신들은 죄가 없으며 변호사를 잘못 만나 여기에 수감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은다. 그리고 뒤이어 앤디는 독백한다. 자신은 쇼생크에 오기 전까지는 어떠한 죄도 짓지 않았지만 쇼생크 감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루도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사법시스템의 역설적 모순에 눈 뜬다.
사법 시스템의 역설적 모순에 눈뜬 앤디는 테스형처럼 고분고분 독배를 마실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레드에게 구입한 조그마한 암석용 망치로 16년간 그의 독방에 이어진 벽을 파서 구멍을 내고 스스로 출옥을 하여 신분세탁을 한 후 멕시코 지와타네호에서 모든 것을 받아주는 바다를 향해 끝없이 이어진 백사장을 배경으로 앤디는 가석방된 레드와 재회하는 엔딩씬으로 영화가 끝이 난다.
우리 모두는 테스형의 철학도 앤디의 용기도 없이 하루하루 법의 그물망에 갇혀 누가 테스형인지 또 누군가가 앤디인지도 모르고 다만 정의로운 판사가 혹은 정의로운 사법시스템이 정의사회를 구현해 줄 것이라 믿어 보지만 그런 일은 유사 이래 일어나지 않았다.
오로지 악세에서 살아남으려는 기득권에 충성하며 수학적인 법 조문에 경도된 , 법대 위에 높이 앉았으나 비루하고 유약하며 행패스럽기까지 한 기계인간들의 판결은 테스형이 독배를 마신 지 2500년이 되어가는 동안에도 조금의 개선이 없이 2025년 대한민국 법정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다층 세상에서도 가장 상층부에서 하층 세상을 구현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그 어떤 경극배우의 변검술을 능가한다.
그들이 법복 안에 숨긴 위선의 가면이 공동체에 끼칠 파급효과는 이제 감당하기 어려운 해악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것은 가치관의 아노미를 넘어서는 인신의 구속, 즉 독재를 앞당기는 마중물이 된다는 역사적 실증은 차고도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