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해 록] 인공지능과 인간

by 윤해

농업혁명이 잉여재화를 창출하면서 화폐경제를 탄생시켰지만 그 화폐경제의 주역인 인간이 한 생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가축혁명을 통해 야기된 가축과의 인수감염이라는 면역 획득의 역사가 없었다면 정주와 군집생활을 시작한 인류 문명은 결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농업혁명이 인류문명의 빛이고 운명이라고 한다면 가축혁명은 그림자이자 숙명의 모습으로 인류사에 있어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이처럼 말과 글로 밝힌 문명이라는 가상세계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농업혁명으로 구축된 화폐경제와 가축혁명으로 면역을 획득한 인간 간의 공진화에 의해 실상의 세상은 굴러갔고, 이 실상의 세상에서 인간의 노동력은 가축과 함께 산업혁명으로 증기기관과 기계로 대체되기 전까지는 문명을 돌리는 손발이며 엔진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손발이 해방된 우리 인류가 자연을 둘러보고 말과 글로써 자연을 해석하고 가공하면서 인류는 몸을 사용하는 유전정보는 기계에게 아웃소싱하고 머리를 사용하는 뇌정보에 경도되면서 자연을 자연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연에 인간의 색깔, 인문을 입히면서 인공의 세상을 만들고 강화시킨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처럼 자연을 인문으로 해석하며 그것을 자연과학이라고 이름 지었지만 인문으로 해석한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 아닌 자연을 해석하기 위해 인문으로 자르고 조각낸 파편화된 과학일 뿐 통섭과 통합은 인간의 역량으로는 요원해 보였고 그렇게 수백 년을 파편화된 과학을 갈고닦으며 물질문명을 발전시켜 온 것이 우리 인류가 이루어낸 과학문명이었다.

물질세계에서 눈부신 과학문명에 도달한 우리 인류가 압도적으로 장구한 시간의 한계를 속도라고 하는 압력으로 생명의 창조, 인공 생명에 도전해 보았지만 생명은 자연의 전유물이라는 사실을 처절히 깨닫고 방향을 돌린 곳이 인공지능은 아니었을까? 즉 0과 1이 끝없이 반복되는 디지털 세계를 창조한 우리의 뇌는 있다 없다 만을 판단하는 세상의 원리에 따라 작동되는 계산기를 생명의 수준까지 개발한 것이 아마 인공지능일 것이다.

이처럼 계산기에서 출발하여 컴퓨터가 되고 이 컴퓨터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었고 클라우드화 되면서 초연결 사회는 급격하게 진행되었고 연결된 디지털 정보는 임계점을 넘어가면서 폭발하게 되고 폭주하는 정보는 초거대 계산기, 인공지능에 의하여 스스로 학습하는 딥러닝에 의해 기술의 특이점을 넘어서게 되었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인류 진화가 수백만 년 전에서 농업혁명이 일어난 1만 년 전까지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었다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인류가 정주와 군집생활을 한 이후부터는 큰 주목을 하지 않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는 농업혁명 이후 1만 년 동안에도 인류의 유전자는 드라마틱한 돌연변이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새삼 세상 속의 인간으로 재탄생한 현대인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한 돌연변이 형질을 새로이 발현하여 유전자 풀의 다양성을 유지하려는 유전자 차원의 분투노력은 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몸은 거의 쓰지 않고 머리만 쓰는 현대의 진화압력이 현대를 사는 인간들에게 어떻게 발현될지는 알 수 없으나 물질문명과 결합된 기술의 혁명은 곧바로 인공지능이라는 초거대 초정밀 초연결이라는 특성을 가진 계산기를 가지게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인공지능과 같은 집단지능의 발명이 인간의 지능을 단순히 대체하는 기술 혁명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기술혁신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인공지능도 어느 정도 생명의 진화여정에 다가서야만 할 것이다.

디지털이라고 하는 0과 1의 판단을 거듭하고 거듭의 횟수를 최대한 늘리면서 이성적으로 기억하는 인공지능이 과연 기억은 감정이라고 하는 38억 년 생명의 진화에 근접하면서 아날로그적 감성을 장착하는 것을 기대하기에는 인공과 자연의 시간의 간극이 만만하지 않다. 인공지능의 기술은 어쩌면 38억 년 진화의 결정판인 인간의 뇌를 모방하고 훔치는 데는 성공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본이 원본이 될 수 없다는 사이비 지능의 한계를 망각한 체 단지 어마어마한 모수의 집단지능을 장착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인공지능 스스로 자연스럽게 딥러닝을 하면서 대다수 인간의 머리 위에 군림한다면 본말이 전도되고 주객이 뒤 바뀌는 희대의 해프닝이 뉴노멀로 자리 잡을 개연성은 상존한다.

38억 년 진화의 역사를 가진 우리 인간은 열등감과 좌절감으로 더 이상 유전적 진화를 포기하고 인공지능에 의탁하는 무사유의 행동을 답습한다면 모두가 열광하는 인공지능의 빛보다는 그림자에 파묻힐 공산이 크다.

양날의 검처럼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가 인간의 명운을 쇠락시키는 기계에 의한 혁명이 아니라 인간 정신과 감정을 고양시키는 기술 혁신의 아이콘으로 다가오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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