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해 록] 풍요豐饒와 빈곤貧困

by 윤해

지구 생태계에서 식물은 동물의 근원이다. 동물이 이동할 수 있는 자유함도 그냥 아무렇게나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있음으로써 식물을 따라 움직이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며 식생의 지도를 따라 옮겨 다니는 자유 정도가 동물에게 허락된 자유이다.

지각에 식물의 머리인 뿌리를 박고 지접 하면서 안정적으로 사는 식물과 달리 머리를 하늘로 향하며 가느다란 가지와 같은 사지를 사용하여 마치 식물 바라기 인양 식물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스토커로 진화된 동물에서 출발하여 초식동물이 풀을 뜯고 살을 찌우면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따라다니는 지구 생태계의 장엄한 먹이사슬의 대서사는 포식과 피식이라고 하는 한 편의 서사시이며 그 서사시에 하모니와 리듬 그리고 박자가 조화롭게 교차될 때 우리는 그 음악과 노래를 자연의 섭리가 지휘하는 풍요의 교향곡이라 부를 만하지 않을까?

이에 비해 식물의 안정적 삶을 보면서 식물을 따라다녔던 동물인 우리가 어느 순간 식물과 같이 정착하고 정주하면서 가상의 믿음을 실상의 신용으로 뒤바꾸면서 화폐경제를 만들었고, 이 화폐를 나누고 나누어 신용을 쪼갠 결과 신용은 사분오열되고 믿음이 사라진 사회는 피곤이 몰려들고 피곤은 빈곤이 되어 모두를 힘들게 하면서 풍요와 빈곤은 희비쌍곡선처럼 교차된다.

이처럼 풍요가 자연의 결과라면 빈곤은 세상의 결말이다. 지구에 풍요를 선사한 식물의 성공이라는 그늘 아래 지구를 빈곤으로 뒤덮은 동물의 실패라는 아비규환이 항상 뒤따르는 것이다.

푸른 별 지구는 이와 같이 풍요로운 식물이 지배하는 행성이며 그 풍요로운 식물에 기대어 기생하는 빈곤한 동물들이 서로 빈곤에서 풍요로 나아가기 위해 아비규환과 분투노력을 번갈아 하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러한 지구 생태계의 한계는 식물을 따라 하면서 정주한 지구 최상위 포식자 인간이 만든 세상의 원리도 이 한계를 벗어날 수없다. 세상이 만든 가상의 풍요를 손에 거머쥔 부자도 사회주의를 꿈꾸는 태생적으로 빈곤한 상상 밖에 할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우리는 풍요의 자유함을 의심해 보지만 풍요는 머리를 땅속에 박아 넣고 지구와 혼연일체가 될 때 지구가 선사하는 선물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비록 우리 인간이 가상의 세상을 만들어 나무와 같은 식물을 코스프레하면서 나무의 나눔을 실천하고 지접 하지 못하고 분주히 돌아다녀 보지만 상록수처럼 의연히 서있는 사철 푸른 소나무 같은 자연의 풍요에 도달하기까지는 연륜과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지구와 혼연일체 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세상의 원리가 자연의 섭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도 전쟁과 환경파괴를 하면서 지구 생태계와 끊임없는 불화를 겪는 이유도 근원을 찾아보면 지구에 지접 하고 사는 지구의 생산자가 지구 최상위 포식자라고 자부하는 우리 인간이 아니며 지구와 혼연일체 동고동락하는 식물이며 오히려 우리는 지구를 갉아먹는 기생충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자책이라도 한 번쯤 해보는 것이 태생적 빈곤에서 잉태된 세상 속에서 상대적 풍요를 상상하고 실천하는 부자들의 역설적인 꿈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짐작해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윤 해 록] 인공지능과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