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나라나 다양한 대안이 없을 때 답답하다. 이처럼 다양한 대안을 가진다는 것은 나의 삶과 나라의 국운을 외통수 1차원에서 2차원 3차원으로 지평을 넓히고 넓혀진 운동장에서 갖가지 전술과 전략을 가지고 승리를 향해 골문을 쉼 없이 두드려 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대안은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피하는 방법이며 외통수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반상을 일거에 뒤집는 고육지책의 한 수로 작용하기도 한다.
개인이나 국가나 현실이 너무 고통스럽거나 답보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매일 보는 가까운 상대에게 말 못 할 고민을 털어놓기보다는 잘 알지 못하지만 멀리 떨어진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기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가까운 상대를 공격하고 먼 이웃과 교류하며 협조하는 원교근공이 사마천의 사기에서 외교의 기본이 된 이유도 아마 이러한 인간 심리가 그 기저에 깔려 있으리라 짐작된다.
구한말 망국을 앞둔 조선은 중국에 사대하고 일본과는 교린 하던 동아시아 중화질서가 아편전쟁,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마지막 남은 히든카드로써 미국에 기대어 국체를 보전하려고 했지만 그 당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에 의해 진행된 가쓰라 태프트 밀약에 의해 망국이 확정되었다. 원교근공이라는 외교전략으로 망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시도는 믿었던 미국의 철두철미한 국익계산 앞에서 무산되었다.
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 and you will go far. 말은 부드럽게 하되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녀라. 그러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카우보이 출신 대통령 시어도스 루스벨트는 오로지 미국의 국익에 기반한 태평양을 지키기 위한 전략으로 미국은 필리핀을 먹고 해양세력의 주구, 일본이 조선을 병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용인한 것이었다.
그렇게 시어도스 루스벨트 시기에 망국한 조선을 독립시키겠다고 나선 미국의 대통령이 시어도스 루스벨트의 먼 친척 뻘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라고 하니 시대변화에 따른 국익의 풍향계도 조변석개 함을 절감한다. 뉴딜과 제2차 세계대전을 이끈 4선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카이로 선언문(Cairo Declaration, 1943년 11월)에서 장개석, 처칠과 만나 오랜 기간 노예 상태에 있던 조선 민족을 깊이 인식하며, 조선이 ‘적절한 시기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가 되도록 할 것임을 결의하였다. 미영중 삼대 대국이 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나 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의논하면서 한반도를 거론한 것도 의외지만 꼭 집어 독립을 약속한 것도 이례적이다.
매헌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 의거 이후 적극적으로 상해임정의 후원자임을 자임한 장개석 총통은 논외로 치더라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오랜 기간 노예 상태에 있던 조선 민족을 깊이 인식하며, 조선이 ‘적절한 시기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가 되도록 할 것임을 결의하는 내용을 카이로 선언문에 담고자 했던 일화는 처칠의 미온적 반응에 비해 파격적이다.
파격과 이례의 카이로 선언에 담긴 내용에 따라 대한민국 독립에 대한 열강의 약속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한반도의 망국과 독립은 시어도스 루스벨트 대통령 때 시작된 망국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한 한국의 독립으로 결자해지 된 역사의 아이러니가 예사롭지가 않다.
말도 험하게 하고 동시에 커다란 몽둥이도 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작한 미중패권전쟁과 관세전쟁으로 시작된 2025년의 파고와 격랑 속에서 원교근공의 평행이론은 백여 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과 미국에 어떤 식으로 발현될지 미국 독립기념일 249주년을 바라보면서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