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동서양은 정반대의 견해를 가진다. 서양이 바라보는 우주는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우주 사이에 흩뿌려져 있는 수많은 별들이 개별적으로 빛나고 있다는 견해를 대체로 수용하였고 이에 반해 동양이 느끼는 우주는 수많은 별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가 연결되어 있고 이 관계를 기氣를 가지고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여기서 출발하는 동서양의 시각차가 곧 문명의 출발 전개 그리고 결과까지도 좌지우지 하였고 우주를 바라보는 세계관에 영향을 주면서 동서양은 독자적으로 발전하기도, 상호 간 전쟁을 통해 부딪히기도, 서로가 뒤섞여 하이브리드 하게 융합되기도 하면서 인류문명 정반합의 역사는 계속되는 것이다.
점령하고자 하는 땅의 여백을 지워나가는 과정이 전쟁이라면 문명 이전의 전쟁은 대체로 공간과 인간을 함께 지우고 새로운 시간, 즉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기 위해 공간과 인간을 함께 청소하는 제노사이드 Genocide 전쟁이었다고 한다면 농경 이후 문명시대의 전쟁은 지배자만 바뀌고 침입민족과 토착민족이 서로 섞이고 융합되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형태로 전쟁의 양상이 점차 변화하게 되었고 그 하이브리드 한 전장의 시작이자 대표적인 곳이 한반도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북방을 통해 들어온 예맥족이 한반도에 먼저 들어와 자리 잡은 삼한 족과 타협하고 공존하면서 국가를 건국한 사실은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흔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한반도인으로서 우리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대목일지도 모른다.
여백을 지워나가는 전쟁의 기본은 침입자가 선주민을 몰살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전쟁의 원리에 대입해 보면 한반도를 침입한 강력한 기마민족이자 전투민족이었던 예맥족이 한반도에 먼저 정착해 있던 진한 마한 변한의 삼한족을 몰살시키지 못하고 타협하며 공존하고 나아간 역사는 침입자 텡그리 Tengri가 토착민인 곰의 토템을 가진 부족에게 장가들면서 단군왕검을 낳는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타협의 건국신화, 단군신화를 가진 한반도의 첩첩산중이 잉태하고 있는 공간의 특수성을 차치하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까?
그러면 왜 한반도는 침입자가 선주민을 제노사이드 할 수 없는 곳이었을까?라고 하는 의문이 든다. 전쟁은 할 수 있는 데 하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전쟁에서 타협이 의미하는 바는 힘과 힘의 균형점일 따름이다. 결국 단군왕검의 탄생은 침입자와 선주민 간의 여백을 지운 전쟁에서 서로 간의 사이를 확인하고 관계를 하여 사이를 세우고 그 사이가 공간을 넘고 시간을 지나 한반도인이라고 하는 새로운 인간이 탄생하게 된 세계사적으로도 독특한 건국신화를 우리는 가지게 된 연유일 것이다.
여백을 지우고 사이를 세워나가면서 한반도는 세계사적으로 비교해 봐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왕조를 가졌고 비록 왕조가 교체되었어도 그 왕조는 단순히 지배층의 교체일뿐 나라가 통째로 이민족 침입자에게 넘어가는 굴욕은 없었으나 120년 전의 을사조약으로 망국이 되고 망국은 냉전의 분단을 가져왔고 분단은 전쟁의 참화를 불러오면서 한반도는 초토화되었고 재건과 번영으로 물질적 풍요는 이루어졌지만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고 하는 정신적 가치관, 즉 건국신화에서 등장하는 단군왕검이 의미하는 화합과 단결 공존이라고 하는 하이브리드화된 가치관을 한민족을 단결시키는 내재적 역량강화에 투입시키지 못하고 냉전과 신냉전의 패권전략인 이이제이의 주구가 되어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린 것도 모자라 동서로 분열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배신하며 총부리를 겨누는 기막힌 현실이 우리가 보고 있는 지금의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암울한 현실이다.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우리 민족의 특장점이자 단군왕검의 아름다운 기억을 되살려서 분열된 우리가 여백을 채우고 사이를 다시 세운다면 저력의 대한국민들은 반드시 관계를 회복하고 융합된 한반도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