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해 록] 민둥산의 억새, 마음속의 갈대
매년 가을이 되면 해발 1118미터 정선의 민둥산에서 은빛억새 축제가 열린다. 잘 자라면 2미터가 넘어가는 볏과의 다년생 억새가 햇빛과 바람에 파도치듯 일렁거리는 모습은 삭막한 민둥산을 억새군무로 뒤덮는 장관을 연출한다.
정선의 민둥산이 강원도 화전민들의 애환이 어린 결과물이라면 화전민이 떠나가고 남은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자리 잡은 억새군락의 억척스러운 생명력은 끈질긴 잡초를 무색하게 만든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개의치 않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민둥산을 온통 덮은 억새의 생명력에 감탄하면서 늘 억새와 헷갈리는 식물이 갈대다. 어른이 되어서도 추억의 동요로 잘 알려진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라는 노래에 등장하는 뒷문밖에는 갈잎의 노래라는 가삿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갈댓잎은 물이 많은 강변에 산다. 둘 다 볏과식물의 여러해살이 풀로서 억새와 갈대는 비슷하면서 다른 사촌간이다.
겉모습이 비슷하다고 식생까지 흡사한 것은 아니다. 억새와 갈대는 살아가는 토양부터가 다르므로 억새와 갈대를 보고 느끼는 메타포 자체가 상이하므로 그 둘을 비유하는 상징 자체가 다르다.
화전민도 버리고 간 강원도 정선 척박한 민둥산에서 뿌리를 내리고 집단을 이루고 생존하며 번성하는 억새의 모습에서 억세게 운이 좋다는 생각과 함께 억새의 억센 생명력을 느끼며 , 한편으로 강가 습지에 자리 잡고 은빛강물이 흘러가면서 생기는 강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따뜻한 엄마와 누나를 연상시키는
뒷문밖에는 갈잎의 노래가 어른이 되고 장년을 넘어 노년에 접어드는 지금까지 아련한 유년을 기억하게 하는 서정성을 내 마음의 갈대는 은유하며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세상은 참 다채롭다. 갈대와 억새가 비슷하다고 같은 식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듯이 사람 사는 세상도 같은 가족 같은 학교 같은 사회 같은 국가에 살고 있다고 같은 생각을 하고 산다는 것이 어쩌면 거대한 착각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비슷할 뿐이지 같지는 않다.
아무리 학문과 이념 종교가 우리를 구속하더라도 , 아무리 삶이 우리를 속고 속일지라도 생로병사의 도정에 선 인생의 여행자로서 우리는 획일화된 생존수단을 인정할 수없으며 인정해서도 안된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살아온 이력이 다른 생명체가 취하는 삶의 방식이 다른 것은 개체를 떠나 집단의 생존확률을 높이려고 설계된 치밀한 자연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비슷하면서 같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는 개체로서 가는 길에도 전체의 생존확률을 높이는 절대 원칙이 존재함을 한순간도 잊지 않아야 그 공동체는 생존을 넘어 번영한다.
편안한 환경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갈대 같은 인간군상을 보면서 실망도 하고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억센 생명력으로 번성하고 축제까지 여는 민둥산의 억새에게 박수를 보내는 분별력 정도만 있어도 우리는 환상에 취해 얼이 썩어가는 공동체를 극복하고 억새를 보며 억새를 닮은 억세게 운 좋은 나라의 나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억새의 꽃말처럼 단결과 용기를 가지고 일상을 살다보면 억센 대운이 우리 앞에 펼쳐지리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