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정글 자본주의와 자국 우선주의가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한 세대 이상을 이어온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저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마치 정글과도 같은 링 위에서 양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눈앞의 이익에 목을 매는 힘의 논리 만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무대가 세계를 휘몰아 감고 있다.
나와 너, 나라와 국가 사이의 관계가 최대 만족을 추구하려고 노력할 때는 관계와 관계 사이에 미처 보지 못한 여백을 찾을 수 있지만, 서로가 최대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관계와 관계 사이의 여백은커녕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깊숙이 들어가면서 갈등과 전쟁으로 접어드는 아비규환의 시대로 돌입한다.
이처럼 가치를 추구하는 최대 만족의 지점은 다양한 잣대가 존재하며 서로가 다양한 가치 안에서 윈윈을 도모할 수 있겠지만, 너의 이익은 나의 손해인 제로섬 게임과도 같은 최대 이익 모드로 접어들면 몰개성이 되고 몰가치 한 정글로 올라가 서로가 피 터지며 한 치의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협박과 압박 그리고 핍박까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몰아치는 거래의 기술은 가치 지향적인 패권질서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요지경 세상으로 우리를 몰아넣고 있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짓고 징징대는 소리가 아무리 귀를 막고 살아도 들리는 세상을 살다 보니 국익을 위해 후흑학이라는 학문까지 정립하면서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변법자강운동으로 몸부림쳤던 패권 도전국의 역사에서 반면교사는 없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250년도 안된 젊은 패권국이 수성을 위하여 으르고 뺨치며 현란한 관세전쟁에 몰두하는 급박한 패권질서 속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줄도 모르고 징징대다가 금품 살포도 모자라 정치보복으로 날을 지새우고, 정작 관세 전쟁이라는 외통수에 몰려서는 국익은 국이 익는 것이라고 동문서답하는 사오정이 빙의된 선무당처럼 급기야 체급도 모르고 날뛰는 철부지 마냥 반일과 반미를 무슨 자주독립의 증거처럼 고장 난 녹음기를 반복하고 있는 자들의 머릿속은 아마 쥐가 나서 아무 말이나 떠드는 망동과 망언 그리고 환청과 환상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며 그 망동의 끝은 국가폭망으로 이어지는 공동체의 파괴일 것이다.
‘將欲奪之·장욕탈지, 必固與之·필고여지’, “장차 빼앗으려면, 반드시 이를 먼저 주라”라는 노자의 말씀처럼 자연의 섭리와 세상의 원리가 이구동성으로 당부하는 말이 기브 앤 테이크 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균형점이다.
균형점은 이처럼 질서가 유지되는 지점이다. 질서가 무너지면 균형점도 무너지고 변곡점이 다가온다. 뉴 노멀로 표현되는 변곡점이 다가오면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고 새로운 질서는 늘 갈등과 전쟁이라는 불협화음을 먹고 자란다. 불협화음을 협화음으로 돌리는 재주야 말로 공동체의 미래를 담보하는 사람이다.
공동체의 미래 세대에게 짐을 지우고 과거를 우벼 파면서 화씨지벽和氏之璧의 완벽을 부르짖는 자야 말로 공동체를 도탄에 빠트리는 자라는 것을 이제는 알 때도 되었건만 하루하루 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그저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고 교언영색에 속아 망국 후 120년, 해방 후 80년을 죽기 살기로 달려온 대한민국을 한 순간에 나락으로 추락시킬 수 있다는 위기감은 나날이 고조되고 있다.
차라리 난득호도難得糊塗의 지혜, 즉 총명함을 감추고 어수룩하게 행동하고 흘휴시복吃虧是福과 같이 손해를 보는 것이 오히려 복이 된다는 의미를 명심하면서 되로 주고 말로 가져오는 노자의 지혜‘將欲奪之·장욕탈지, 必固與之·필고여지가 초읽기에 몰린 대한민국에 한가닥 대안이 될지 그저 답답할 뿐이다.
비 구름이 몰려오는 와중에서도 승자는 구름 위에 태양을 보고 패자는 구름 밑에서 비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다. 먹구름은 몰려왔고 비는 조만간 퍼부을 것이다. 비에 잠겨 떠내려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의연히 터를 잡고 버티어 내면서 구름 위에 태양은 반드시 나온다는 확신으로 관세전쟁의 승자가 된다면 우리에게도 기회는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