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고위직 중 방위병이라도 마친 사람이 드문 국가, 대한민국은 어떤 면에서는 참 희한한 나라다.
얼마 전 드디어 우리 집 막내가 예비역 병장이 되어 전역할 때쯤 추억의 PX에 들러 이런저런 물건을 보면서 이제 PX 출입 자격도 마지막이네 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PX 출입 자격 안내문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내용은 이랬다.
1. 현역군인 및 가족 2. 국가 유공자 및 직계 가족
3. 병역 명문가.... 어디 도대체 병역명문가 자격이 뭐지 하는 생각과 아들 네 명이 한 명의 열외도 없이 예비역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고 나 자신도 최전방에서 만기 전역 했던 예비역 병장이므로 도합 5 병장 네 가족이라 병역 명문가 자격이 되지 않나 생각하고 혹시 하면서 깨알 같은 자격 안내문을 읽어갔다. 그리고 그 안내문을 다 읽고 나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삼대가 병역을 마쳐야 하며 독자 독자 독자로 내려오면 그래도 3명이 병역을 마치면 되지만 아버지의 형제라도 있으면 사촌들까지 모조리 병역을 마쳐야 병역 명문가가 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렵고도 긴 허들을 통과해야 겨우 PX 출입이 허가되는 병역명문가의 자격을 득한다는 객관적 사실 앞에서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하여 나의 아버지부터 시작된 우리 가족의 117년에 걸친 병역 이행의 가족사를 처음으로 한 번 되짚어 보았다.
윤봉길의사와 동시대를 사셨던 아버지께서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므로 일본군 복무를 피하신 것이 오히려 애국이었고, 아버지 소생 6남매 중 남자 형제인 형과 나 모두 육군 병장 출신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아들과 남자 조카들 대에 병역 대상자 8명 모두 예비역 장교 거나 예비역 병장으로 만기 전역 하였다. 드디어 나의 막내까지 병장으로 전역하면서 그 흔한 방위병 하나 없이 예비역 병장, 장교 출신만 도합 12명이 청춘의 3년, 가족 전체로는 어림잡아 총 36년 간을 국가를 위해 복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17년이라는 삼대가 지나는 동안 13명의 병역대상자 중에 오직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나의 아버지 한 사람 만이 망국으로 인하여 존재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갈 수도 없었던 군대에 가지 않았다고 병역명문가가 되지 못하는 기막힌 경우의 수를 마주하면서 그저 아연실색했다. 그리고 이대로 슬쩍 넘기자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완수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태도가 이 정도 수준 밖에 되지 않는가라고 하는 깊은 자괴감이 밀려왔다.
무슨 대단한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PX 출입을 허가하는데 필요한 병역명문가의 조건을 3대에 걸친 완벽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권력에 가까이 갈수록 병역이행자가 줄어드는 해괴한 팩트는 전쟁의 최전선에서 병역의 의무를 몸소 실천했던 구미 선진국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와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서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노블레스 라이트Noblesse right가 되어 의무는 행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고 단물에 허우적 거리는 고위층들의 아무 말 대잔치 같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개탄스럽다.
나라다운 나라가 되려면 의무, 특히 병역을 이행한 사람들을 우대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우대는 고사하고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마치 돈 없고 백 없는 어둠의 자식들이나 도맡아 다녀오는 의무쯤으로 취급을 당하면서 홀대하는 나라가 된 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이십 대 젊은 날에 분대 규모 지휘 경험도 없는 자가 국군통수권자가 되어 세계 5,6위를 다투는 재래식 전력을 가진 나라의 군대를 쥐락펴락 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촌극이요 코미디 아닐까? 그러나 민주를 가장한 매국노, 문민을 허울로 세운 모리배들의 젊은 날에 생략된 신성한 병역의 의무 3년간의 모습은 그 어디를 둘러봐도 찾을 수가 없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밖을 나설 때/ 가슴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친구들아 군대 가면 편지 꼭 해다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 않게 / 열차시간 다가올 때 두 손 잡던 뜨거움 / 기적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짧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는지/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에 편지 한 장 고이 접어 보내오 /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양지만 쫓아 필사적으로 단물에만 꼬이는 파리떼들의 젊은 시절 청춘의 한가운데에 과연 김광석이 불렀던 이등병의 가슴 저민 스토리가 자리 잡고 있었을까? 권력의 단물만 빨고 있는 지금의 그들이 단 한 번이라도 애국가를 아침저녁으로 수 천 번을 불러야 만기전역 예비역 병장이 된다는 사실, 밤마다 잠 못 자고 천일의 앤이 아니라 천일의 보초를 서야지 만기 전역 예비역 병장이 된다는 사실을 꿈에라도 알 수 있었을까?
더 무서운 사실은 애국가나 보초는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한 만기 전역 예비역 병장이 겪은 군대 생활 중에 거의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의 사소한 일상이었으며 예비역 병장들의 뇌리에 깊이 박힌 트라우마로 점철된 병영의 천일야화에는 아예 올릴 수도 없었던 병역의 기본이었다는 것을 과연 말로만 애국하는 그들은 감히 떠올리고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일말의 상상이라도 했다면 권력의 단물만 빨고 있는 지금의 그들이 병역 명문가 자격요건의 허들을 체험과 경험이 아닌 상상을 기반으로 그렇게 완벽할 정도로 어렵게 만들어 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애국은 젊으나 늙으나 말로 하는 것이 아니며 더더욱 상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실천의 영역이며 희생과 투신 그리고 살신까지 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 죽을힘을 다해야 겨우 할까 말까 하며 될까 말까 한 일이다. 그리고 그 애국의 유일무이한 증거 가운데 하나가 대한민국 70여 년의 역사동안 음지에서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온갖 핀잔까지 감내하며 국가의 부름을 받고 고난과 오욕을 묵묵히 겪으면서 이등병의 편지를 부치고 천일야화를 써내려 갔던 이 땅의 이름 모를 수많은 예비역 병장들 자신이었음을 그들 자신들도 까마득히 몰랐을 것이다.
왜일까? 그들 예비역 병장들은 젊은 날 출발부터가 권력의 단물이나 쫓는 파리떼가 아니었고 , 설령 그런 파리떼였어도 대한민국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度 시스템 안으로 들어와 입대하여 이등병의 편지를 부치고 3년 동안 천일야화를 써내려 가면서 파리떼는 희생하고 투신하며 살신하는 만기전역 예비역 병장으로 거듭나게 하는 히딩크 매직과도 같은 기적이 70년간 이어져 내려온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권력의 단물에 빠진 파리떼들이 국가를 함부로 쥐락펴락 하면서 애국을 말과 상상으로 하면서 나라를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겠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흔들릴 망정 무너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저력이 바로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를 부르며 이등병으로 입대하여 일병, 상병, 병장을 거쳐 오욕의 강물을 건너고 인내의 한계를 시험받으며 묵묵히 국가를 위해 헌신했으면서도 그것이 희생인지도 모르고 매국노와 모리배들이 날뛰면서 온갖 모욕을 퍼부어 대도 끄떡도 하지 않고 음지에서 지금도 의무를 다하여 애국하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이름 모를 대한민국 예비역 병장들의 힘 때문은 아닐까? 확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