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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 막장과 하늘나리

by 윤해

막장 갱도로 들어가는 광부가 탄가루가 묻은 검은 피부로 서로에게 살아서 만나자고 행운을 비는 인사가 독일어로 글뤽 아우프 glück auf라고 한다.

인생이 막장인지 세상이 막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막장에 들어간 기분이 들 정도로 숨이 턱턱 막히고 기가 차고 코가 막힌 요지경 세상이 열리고 있다. 세상 속의 인간은 직전 기억에 크게 좌우된다. 그래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속담처럼 누군가에게 욕을 당한 뒤,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엉뚱한 곳에서 화풀이하거나 불평을 하는 상황이 공감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악당과 빌런들은 직전 기억을 조작하고 윤색을 넘어 각색까지 하면서 대중의 심리를 이용하여 선동하고 그 선동의 결과 생긴 과실을 모조리 자기 것으로 돌리는 희한한 재주를 발휘하여 공동체를 갈라 치기 하며 분열시키고 그 분열과정에서 생기는 분노의 에너지를 적절히 이용하여 공동체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가게 한 후 유유히 다리를 불사르는 짓을 장기로 세상의 인간들을 막장으로 내몬다.

공동체와 개인 모두 막장에 갇히고 나서야 비로소 진실에 눈 뜬다. 그전에 아무리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말라고 그 길로 가면 죽는다고 그렇게 뜯어말려도 만사가 허사일 뿐이다. 세상 이치는 한쪽 문이 잠겨야 다른 쪽 문이 열리고 곤경에 처해 봐야 옥석을 가리는 눈이 떠지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섭리든 세상의 원리든 오르막 내리막의 희비쌍곡선이 요동치는 파동 만이 존재할 뿐 호불호,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잣대는 각자의 인식이나 상상에서 명멸하는 인두껍과 같은 껍데기일 뿐 나나 나라의 미래는 알맹이로 똘똘 뭉친 진실과 실력으로 판가름 나기 마련이고 결국에는 사필귀정의 커브를 그리면서 대운과 폭망 대박과 쪽박으로 우리를 정신없이 뒤흔들어서 막장까지 끌고 가야만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요지경 세상으로 기어이 우리를 내몰고야 마는 것이다.

현재 만이 존재한 우리의 한 생은 현재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지하 수천 미터 갱도를 내려가는 막장에서 살아서 만나자며 글뤽 아우프 glück auf를 인사처럼 남발하지만 막장에서 검은 황금 석탄을 캐지 못하면 빈손으로 수천 미터 갱도를 올라와 지상에 당도하여도 적수공권이 되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게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이처럼 세상은 현재라고 하는 막장에 갇혀 미래를 담보하는 에너지이자 검은 황금, 석탄을 채굴하는 광부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 광부에게는 미래를 열어줄 자식이 있고 가족이 있어 검은 황금이 있는 막장으로 내려가야 살 수 있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고 여말선초 호의호식하면서 막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실력이 부족해 망한 고려를 그리워하다가 태종에게 죽임을 당한 두문동 선비 72명의 넋이 하늘로 올라가 정선의 어느 꼴짜기 두문동재 어느 언덕에 숨어 살면서 두문동 선비 나리가 두문동재 하늘나리로 환생한 것은 아닌지 숨이 턱 턱 막혀오는 삼복염천에 에어컨을 최대로 작동시키면서 두문불출하고 있는 도시민들을 시원한 강원도 정선의 자연바람이 부는 두문동재로 달려가서 두문동 선비나리가 하늘나리로 변해 여전히 살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막장의 찜통같은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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