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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 막장드라마와 대서사시大敍事詩

by 윤해

사람으로서 자연에서 나서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다 보면 현실의 나가 꿈을 꾸는 것인지 꿈속에 내가 세상을 사는 것인지 당최 햇깔릴 때가 부지기수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자연의 운행원리와 별개로 멀쩡히 뜨있는 해를 먹구름으로 가리며 대명천지를 암흑천지로 바꾸면서 우리를 햇깔리게 하는 것들을 총칭하여 번뇌라고 부른다.

세상의 원본인 자연에서 나고 자란 우리가 자연의 사본인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섯 가지 감각 기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로 여섯 가지 인식대상,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온몸으로 느끼며 산다. 그리고 그 느낌은 기억을 만들고 기억은 감정을 잉태하면서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일종의 환상을 창조하면서 막장드라마와 같은 번뇌를 만들어 내며 한 생을 사는 것이다.

이처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는 육근六根과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라는 육식, 즉 육근육식六根六識이 감정과 기억의 합작품인 과거 현재 미래와 만나면서 6 ×6 ×3=108 번뇌라고 하는 막장드라마를 쓰고, 108 번뇌로 써 내려간 인생이라는 막장드라마는 108배라고 하는 수련을 통해 단련되고 정제되며 정련 Purifying 된 산사의 언어로 재탄생되면서 우리는 드디어 환상과 같은 막장 드라마에서 벗어나 보다 사실적인 대서사시大敍事詩를 만나게 된다.

이와 같이 환상과 같은 미몽에서 깨어나서 사실에 다가가는 한 생의 여정이 우리 인생의 막장드라마가 도도히 흐르는 대하드라마가 되고 대하드라마가 정제되고 정련되면서 우리의 한 생은 한 편의 대서사시로 마무리되는 여정을 밟는 것이다.

국민학교 시절 교문을 나서면 교문 앞에서 군것질 거리나 오락거리를 파는 상인들로 교문 앞은 늘 북적거렸다. 그중에서 지금도 기억나는 독특한 볼거리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탁구 라켓 보단 조금 큰 기구 속에 필름과 조명을 넣어 완성한 컷 사진을 수동 레버를 이용해 돌려 보면 눈앞에 신기한 요지경이 펼쳐지는, 지금 생각해 보면 조악하기 짝이 없는 볼거리를 팔면서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했던 그때 그 시절은 정말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귀하디 귀했고 전화는 언감생심 휴대폰 스마트폰은 꿈도 못 꾸던 시절 우리 모두의 육 근은 청정하기 이를 때 없었다. 순진하다 못해 무구하기까지 했던 그때 그 시절 우리 집에는 아버지의 업무 때문에 텔레비전에 앞서 백색전화기 한대가 사랑방에 떡하니 자리를 잡으며 설치되었다. 분명 전화기 색깔이 검은색인데 왜 백색전화기라고 하지라고 하는 의문이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미처 퇴근하시기도 전에 울려 퍼진 때르릉 하는 전화기 소리에 정말 순진무구했던 우리 식구 모두는 순식간에 얼음이 되었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몹시 놀란 표정으로 아무도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고 그저 경이로운 눈으로 까맣지만 하얀 이름을 가진 전화기로부터 멀어지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전화기가 있는 사랑방에서 벗어나려 했다. 이처럼 전화기와의 첫 대면은 ET와의 조우처럼 경이롭고 생소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안면을 튼 전화기를 시작으로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들어오면서 그동안 라디오에서 새어 나오던 성우의 목소리에 일희일비하면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꿈을 꾸듯 드라마를 머릿속에 그렸던 동심은 헌신짝처럼 라디오를 내치고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 진을 치면서 순돌이도 아니고 차돌이도 아닌 텔돌이가 되고 말았다.

라디오라는 귀로 듣는 섭리의 세계와 작별하고 텔레비전이라는 세상의 원리로 달려간 나는 라디오가 들려주던 상상의 섭리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현실의 원리에 깊이 빠져 들어가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간 텔돌이가 되고 만 것이다.

이처럼 요술경인지 요지경인지 모를 국민학교 시절 교문 앞에서 본 볼거리를 시작으로 라디오 전화기 텔레비전을 거쳐 컴퓨터 휴대폰 스마트폰으로 기술 혁명이 일어나면서 순진하고 무구했던 우리들의 내면은 초심을 잃고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의 자극이 더해야 했으며 그로 인해 육근육식六根六識이 과거 현재 미래와 만나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108 번뇌 속으로 깊숙히 빨려 들어가고야 말았다.

남의 인생을 훔쳐보는 관음증에서 출발한 현대 문명의 이기들을 살펴보면 일관되게 흐르는 세상의 원리가 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무언가를 팔지 않으면 생존기반이 사라진다. 그래서 모두들 필사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팔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존본능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이 TV, 컴퓨터, 스마트 폰이다. 이 문명의 이기들이 한결같이 팔고 있는 것을 딱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두려움'이라는 세 글자이다.

장르 불문 두려움을 팔고 있는 현대문명의 이기는 육근육식六根六識이라는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비촉법과 과거 현재 미래와 결합하여 다양한 장르의 막장드라마로 우리 안의 108 번뇌를 열심을 다하여 깨우고 있다. 서사敍事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는다는 의미이다. 현대문명의 이기가 순진무구했던 우리들에게 번뇌를 심느라 절치부심하며 반세기 이상 장르를 불문하고 막장드라마를 아침부터 틀어재낀 결과 대한민국은 온 국민의 108 번뇌를 마침내 깨우고 말았고 108 번뇌로 가득 찬 위정자들이 밤낮으로 설치고 다니며 패악질을 당연한 듯 해대고 다니는 현실의 막장드라마를 온종일 마주하게 되었다. 108 번뇌는 오로지 108배를 통해 수련하고 정제하며 정련하여야 씻을 수 있는 대서사시大敍事詩를 완성할 수 있는데 돌아가는 형세가 대서사시大敍事詩는 요원하며 오히려 네버엔딩 막장드라마 스토리를 쉬지 않고 쏟아내고 있는 작금의 현실 앞에서 당랑거철의 용기로 오늘도 조그마한 서사를 몇 줄 적어 내려가는 것으로 대서사시大敍事詩에 한발 다가서려고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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