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하기 위해 나무에서 내려와 사바나를 걸어 해협을 건너고 산을 넘고 강을 지나서 지구 끝까지 대를 이어가며 퍼져나간 호모사피엔스의 원래 직업은 사냥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구상의 그 어떤 경쟁자 보다 뛰어난 지구력과 던지기 능력을 겸비하고 한 곳에서 지접 하지 못하고 사냥감을 쫓아서 지구 끝까지 다다른 사냥꾼들이 활짝 연 수렵시대에 이미 인류는 지구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수렵시대에 사냥꾼의 성공신화를 써내려 가면서 기존 포식자들의 사냥 패턴을 혁신한 이 이상한 사냥꾼들은 농업혁명을 통해 정주하며 일종의 가상 문명을 이루고 난 뒤에도 수렵시대 사냥꾼의 성공신화를 버리지 못하고 현대문명과 충돌하기도 타협하기도 하면서 오래된 본능과 새롭게 형성된 이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부조화를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수렵시대에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 자리매김한 우리 인류의 특장점, 지구력과 투척능력에 더해 인류는 인지혁명을 거치면서 뇌와 손의 공진화로 폭발된 뇌정보 처리능력을 획득하면서 단순히 생존을 위해 사냥하는 사냥꾼에서 마치 게임을 하듯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대기하면서 원하는 바를 낚는 낚시꾼으로 점차 변해간 것은 아닐까?
이처럼 낚시꾼의 원형은 사냥꾼이지만 수렵의 본능과는 상당히 다른 게임의 이론에 기반한 차가운 이성으로 수많은 캐릭터를 창조해 내었고 그 창조된 캐릭터마다 접미사 꾼을 붙이는 수많은 현대 문명의 스페셜리스트를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그렇게 출발한 꾼의 세계는 우리 인류가 만든 가상문명인 현대문명 안에서 명멸하고 구별되며 차별화를 거치면서 더욱더 정교해졌고, 그 게임의 법칙에서 탈락된 조금이라도 수렵의 낭만이 남아 있던 스페셜리스트는 영락없이 꾼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도태시켜 온 것도 우리 현대문명의 일관된 원리인지도 모른다.
우리 인류의 본능 안에 숨 쉬는 수렵시대 사냥꾼의 기억은 문명시대라는 가상의 시기를 거치면서 강태공처럼 세월을 낚는 낚시꾼이 되었고, 정보화 혁명을 거치면서 낚시꾼은 게임머니를 낚는 게이머로 변모하게 되었다.
사냥꾼에서 게이머로, 꾼에서 전문가로 탈바꿈되어 가는 와중에 도태된 수많은 스페셜리스트는 꾼으로 매도되거나 사회부적응자로 전락되어 가면서 세상의 다양성과 활기는 화폐라고 하는 일종의 게임머니를 지급하면서 자본주의 게임에서 승리한 1%도 안 되는 자들에게 99%의 게임머니를 독과점해서 몰아주고 게임의 법칙에서 탈락한 99%의 참가자들에게는 1%의 게임머니를 가지고 이전투구시키는 카지노 자본주의 세상을 만들고야 말았다.
수렵본능을 간직하고 있는 사냥꾼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과 불이익을 주고 있는 카지노 자본주의 세상은 1%의 게임머니 중 부스러기 머니라도 벌기 위해서 오늘도 사냥감이 되어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출근길에 나서는 상처받은 사냥꾼들의 후예들에게는 한 때 그들의 본능 속에 각인된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서 매머드를 사냥하여 공평하게 분배했던 수렵시대의 아련한 기억을 시나브로 초기화시키고 있다.
본능과 현실의 부조화 속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밀며 사냥꾼들을 조소하고 있을 채택된 스페셜리스트의 자판 두드리는 섬섬옥수纖纖玉手가 연약하기 그지없음이 한 편으로 기이할 따름이다.
이에 비해 황소 뿔도 쥐고 흔들 손을 가진 사냥꾼들은 스스로 미끼가 되어 결국 섬섬옥수纖纖玉手를 가진 스페셜리스트의 간택만 기다리는 절망의 바다를 지나 사냥꾼에서 사랑꾼으로 낚이는 사냥감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사냥꾼의 곤궁한 처지와 세태가 꾼의 몰락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세상이 변했음을 실감하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