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수많은 계급이 존재하지만 푸른 견장을 단 지휘관만큼 막중한 책임을 어깨 위에 올린 군인은 없다.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을 거쳐 사단장까지 명령체계는 엄중하고 지휘계통이 일사불란 할 때 그 군대는 강군이 되어 마침내 승리하는 것이다.
이처럼 지휘관이 어깨에 매단 푸른 견장의 의미는 군대의 유일한 존재 의미인 승리에 다가서기 위해서 부하들의 생사여탈권을 모조리 지휘관에 일임하는 엄정한 명령체계이며 동시에 돌격과 후퇴라는 일사불란한 지휘체계의 결정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유엔에 의해 탄생했고 승인되었으며 유엔군이 최초로 결성되어 파병되어 처음으로 피를 흘린 전쟁인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불과 10일 후 1950년 7월 5일 딘 소장의 특명을 받고 부산과 대전을 통해 오산 죽미령에 투입된 찰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 Task Force Smith 400명은 지피지기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1번 국도를 통해 T-34 전차를 앞세우고 들어온 인민군 주력부대를 맞아 60명이 전사했고 21명이 부상당했으며 82명이 포로가 되는 참담한 전투 끝에 유엔군의 이름으로 벌어진 최초의 전투에서 7시간을 버티면서 분전하여 천금과 같은 하루를 버티면서 긴박했던 유엔군의 낙동강 방어선 구축의 귀중한 시간을 벌어주며 이국의 하늘 밑에서 피를 뿌리고 산화했다.
이처럼 수면 위의 전쟁은 난폭한 외교이며, 수면 아래의 전쟁은 스무 살도 안 되는 앳된 군인의 피와 살이 터지는 광기의 폭력으로 지탱되는 정말 거지 같은 일이다. 그리고 그 광기는 생사를 초탈하게 하면서 삶의 대부분을 내려놓게 만드는 거대한 앎에 접근한다.
찰스 브래드퍼드 스미스 Charles Bradford Smith 중령은 1916년 5월 7일에 미국 뉴저지주 렘버터 빌에서 출생하여 1939년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한국 전쟁 초기 오산 죽미령에서 조선인민군과 처음 교전한 유엔군 소속 미군 지상군 부대인 일명 스미스 특수임무부대(Task Force Smith)의 지휘관으로 유명하다. 육군 준장으로 퇴역했으며 2004년 5월 27일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대장장이 수공업자라는 의미의 스미스는 제분업자라는 의미의 밀러와 같이 서양에서는 흔하디 흔한 성씨이다. 우리나라로 봐서는 김, 이, 박과 비슷하려나. 어쨌든 우리나라를 공산세력으로부터 지켜내고 지금의 우리가 있게 한 한국전쟁 전사에서 우리는 대장장이 수공업자 가문의 스미스 중령에게 큰 빚을 진 것은 물론 스미스 특임부대의 대대장이자 지휘관이었던 찰스 스미스 중령 자신도 유엔군 최초의 전투를 자신의 지휘 아래 자신의 병사들이 치러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그 긴박했던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또한 한국전쟁의 간과하기 쉬운 비사가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패배를 딛고 일어선 전쟁의 승리에서 우리는 전쟁의 결과인 승리에 주목하기 쉽다. 하지만 전쟁의 승리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신없이 당하는 전쟁 초기, 적의 예봉을 끊기 위하여 자신의 소중한 생명은 물론 지휘관으로서 부하들을 소모시키며 산화해 가는 젊은 넋의 한 맺힌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오산 죽미령에서 파죽지세의 조선인민군을 막고 서서 7시간을 버텨내고 철수한 찰스 브래드퍼드 스미스 Charles Bradford Smith 중령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다시 찾은 오산 죽미령에서 모든 공을 자기가 지휘했던 병사들에게 돌리며 겉으로는 의연했으나 마음속으로는 아마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이러한 비장함의 무게가 바로 지휘관의 어깨 위에 달린 푸른 견장의 무게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