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 보면 물러설 수 없는 지점에 서 있는 경우를 만난다. 이 지점이 바로 결정적 지점, 영어로 crucial point라고 한다. crucial point는 적이나 상대방과 힘겨루기를 하다가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지점에 도달할 때의 지점이며 바꾸어 말하면 적이나 상대방도 이 지점을 돌파하지 못하면 거꾸로 전세가 역전되어 역공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느껴지는 절박한 지점이기도 하다.
1950년 8월 18일 유학산 정상에서 뻗어 내린 647 고지, 대구 북방 22킬로미터에 위치한 다부동 전투의 전야는 보름 달빛을 닮은 듯 마음 한가득 풍요로움이 가득한 이름 그대로의 다부동 고지를 말없이 비추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던 국군과 인민군 모두 왜 자신이 여기에 서 있는지 왜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했는지 아무도 몰랐다. 다만 기계적으로 살기 위해 혹은 죽지 않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고 포탄을 터뜨리고 착검을 한 소총과 개머리판을 번갈아 휘두르면서 지옥과 같은 백병전을 이어 나갔다. 태풍의 중심은 고요하다. 마찬가지로 전투의 한가운데는 어떤 이념도 어떤 사상도 들어올 틈이 없다. 애국심은 미처 생각할 여유가 없다. 전장에서의 용기는 오로지 전우애다. 내 곁에 있는 전우가 피가 솟고 살이 터지며 죽어갈 때 전투의 공포는 말끔히 사라지고 적개심이 하늘을 찌르며 용기 백배하여 두려움을 잊고 총알을 향해 적진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전진하며 힐끗 돌아본 죽어 있는 전우의 성난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갓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병사의 눈빛은 더 이상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의 무사귀환을 비는 어머니 품속의 아들이 아니라 야차夜叉의 용맹함과 아귀餓鬼의 집요함을 일순간에 갖춘 용사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전쟁은 이처럼 사람을 바꾼다 바뀐 사람이 산하를 바꾸고 바뀌어진 산하가 나라를 완전히 환골탈태시키는 것이다.
1920년 평안도 강서 출생의 서른 남짓한 이립而立의 사단장 백선엽의 국군 제1사단은 유학산과 가산산성이라는 산악 지형의 이점을 활용해 다부동 일대에 설정된 주저항선에서 대구를 공략하려는 북한군 3개 사단을 상대로 낙동강 방어 작전 중 가장 치열한 혈전을 벌였다. 다부동 일원에서는 대구를 놓고 피아(彼我) 간에 유학산 전투, 328 고지 전투, 837 고지전투, 674 고지 전투, 볼링장 전투, 가산산성 전투 등 낙동강 방어선 상뿐 아니라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가운데서 837 고지는 대구 사수의 최고 요충지였고, 유학산은 아홉 번, 328 고지는 무려 열다섯 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뀔 정도로 피아간에 물러설 수 없는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을 정도로 처절한 전투가 이어진 곳이 낙동강 방어선의 crucial point , 다부동多富洞 전적지 라고 해도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우여곡절의 지옥도를 경험하고 낙동강 방어선의 핵심인 다부동에서 적을 격퇴한 국군은 낙동강을 뒤로하고 한강을 지나 대동강울 건너고 청천강을 넘어 마침내 압록강에 도달하였다. 천년의 적 중국의 개입으로 통일은 미완으로 그쳤지만 북진통일의 군화끈을 당겨 맨 전기를 마련한 전투가 낙동강 방어선의 최대 혈전지 다부동 전투 임에는 틀림없다.
2023년 7월 5일 다부동 전적기념관 한편에 자그마한 화강석 기단석 위 오석으로 된 기념비가 백선엽 장군의 맏딸 백남희가 올린 다부동 지게부대 부대원들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이립而立의 사단장 백선엽 장군은 비록 전투는 국군용사들이 하였지만 다부동 전투 승리의 일등 공신은 유학산 험준한 고지를 헤아릴 수도 없이 오르내리며 포탄과 보급품을 지게로 지어 나르고 부상병과 사상자들을 지게에 메고 산을 내려간 다부동 전투의 히든 히어로 다부동 지게부대원들의 영웅적인 업적을 뒤로하고는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었던 것인지 백선엽 장군의 유지를 받들어 다부동 전투에서 산화한 지게부대원들에게 바칩니다로 시작되는 추모비를 세워 그들의 공적을 세상에 알린 것이다.
50kg 이상의 포탄과 보급품을 지게에 지고 800 고지 이상의 가파른 산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며 하루 평균 50명이 전사했던 다부동 지게부대원들의 헌신과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도 없었다는 엄중한 현실인식 없이는 대한민국은 이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사면초가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들 중 알려고 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궁금하다.
다부동을 다부로( 무엇인가 상황이나 인물이 의외로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경상도 사투리) 소환해야만 현재의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난제가 풀릴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