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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 슈퍼스타 원효와 의상

by 윤해

북한산을 조망하는 전망대에 서면 왼쪽에는 자애로운 모산母山 원효봉이 백운대를 뒤로 한 채로 서있고 오른쪽에는 엄격한 아버지 같은 모습의 의상봉이 우뚝 서있다. 원효는 문맹의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빛을 전해 주었고, 의상은 방대한 화엄경 587,261자를 단 210자로 압축한 법성게法性偈를 통해 통일신라 호국불교를 확립하였다.

삼국통일 전쟁이 정점으로 치닫던 7세기 초에 8년 터울을 두고 태어난 원효 (617~686)와 의상(625~702)은 삼국통일 전쟁과 이어진 나당전쟁으로 피폐해진 한반도 백성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분열된 세상을 불교적 이상사회로 통합하는 일에 평생을 함께 한 도반이었다.

원효와 의상은 상반된 삶의 발자취를 밟으며 색다른 접근법으로 구도의 길을 함께 걸어간다. ‘해골물 사건’의 전말은 660년 무렵 당나라로 함께 유학을 가기 위해 당항진黨項津으로 향하던 원효와 의상이 어느 무덤가에서 하룻밤을 묵는데, 한밤중에 목이 말라 바가지에 담긴 물을 달게 마시고 아침에 깨어보니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원효는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이구나라고 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의미를 깨닫고 발길을 되돌려 독학의 길로 들어섰고, 의상은 초심 대로 유학길에 올랐다는 같은 경험을 하고도 다른 선택을 한 두 사람의 구도의 길은 사뭇 달랐다. 원효가 종교와 세속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무애행無碍行으로 승속불이僧俗不二의 자유로움을 구가했다면, 의상은 출가자로서의 계율을 엄격히 지키며 화엄학華嚴學에 전념하면서 정도正道를 걷고자 하였다.

한강유역을 둘러싼 삼국의 쟁패가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던 시절 북한산은 고구려 신라 백제의 힘의 균형점이 충돌하던 지점이라 수많은 전투를 겪으면서 무고한 군사와 인명이 살상되었고 그 치열했던 산성전투가 한강을 중심으로 북한산과 아차산 등 에서 벌어지면서 통일전쟁은 막을 올렸고 밀리고 밀리는 싸움 끝에 통일 신라라고 하는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가 탄생하였다.

삼국통일은 단순히 군사적 통일 만으로 마무리될 수 없었다. 백제 유민과 고구려 유민이라는 이질적인 집단을 하나로 모으고 진정한 삼국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통일전쟁 과정에서 희생된 원혼들을 위로하고 통일신라라고 하는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할 그 무엇인 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 통합의 중심에서 삼국시대 공통의 종교, 불교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하였으며 그 중심에 선 인물이 원효와 의상이었고, 그 중심무대가 과거 삼국의 치열했던 교착점인 한강유역과 북한산이었을 것이다.

북한산 등반을 하면서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불교佛敎적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수봉文殊峰과 보현봉普賢峰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의미하고 나한봉羅漢峰, 나월봉蘿月峰, 용출봉龍出峰, 용혈봉龍穴峰, 증취봉甑炊峰 등 수많은 봉우리들이 불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

곰곰이 살펴보면 이 봉우리들은 북한산성의 자연 성곽 능선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즉 북한산과 북한산성을 하나의 거대한 불국정토佛國淨土, 즉 부처가 머무는 깨끗한 세상으로 만들어 피로 얼룩진 삼국통일 전쟁의 후유증을 어루만져 한반도 최초의 통일왕조로서 통일신라가 물리적 통일을 넘어 이질적 세 국가를 용광로에 녹여서 하나의 민족으로 재탄생시킨 원효와 의상이라는 불교계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한민족의 원형을 만들어낸 두 사람의 걸출한 한반도의 슈퍼스타를 탄생시킨 곳이 바로 한강을 끼고 한반도를 아우르는 북한산이 아니었을까?

천년왕국 신라는 삼국 중에서 비록 후발주자였지만 나라가 멸망당할 누란의 위기 때마다 호국불교를 내세워 공동체를 단합하고 그 단합이 결국 언더독의 기적을 이루어내면서 삼국통일이라고 하는 한민족의 원형을 기어이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한민족 통합의 원형은 통일신라의 수도 서라벌이 아닌 한반도의 중심 한강유역을 굽어보는 북한산 원효봉 의상봉에 고스란히 남아 수천 년을 흐르고 있는 한강을 굽어 보면서 한강의 기적은 산업화 민주화만 가지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분열하지 않고 한민족 통합의 원형을 지켜내야만 완성될 수 있음을 한민족의 원조 슈퍼스타 원효와 의상이 지켜보면서 웅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산 등반객들은 과연 알고나 있을지, 모르면 그저 알려주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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