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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 설계와 시공

by 윤해


만약 조물주가 이름 그대로 세상을 설계하고 시공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 상당한 애착과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들지 않았을까라고 하는 상상을 한 번 해 본다.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의 끝인지 시작인지 시종을 알 수 없는 한반도는 동양적 관점에서는 유라시아 대륙이 시작되는 곳이고, 서양적 시각에서는 유라시아 대륙이 끝나는 곳이다.

유라시아의 광활한 대륙에 비하면 한 줌 밖에 되지 않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서 조물주가 기울인 심혈은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세심함과 정교함이 아니었을까? 이처럼 세심함과 정교함으로 만들어진 복잡 다난하고 아기자기한 나라에 산다고 하는 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일단 다른 나라에 나가 살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고 한다.

조물주가 만든 자연이 극강의 공력으로 한반도를 만든 것과는 반대로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가 만든 세상은 극강의 가성비를 바탕으로 설계되고 시공된 획일적인 아파트로 대표되는 회색빛 콘크리트 숲으로 뒤덮고 있다는 아이러니는 조물주의 눈으로 보면 자연과 인공의 놀라운 균형감이라 감탄하지는 않았을까?

스스로 그러한 자연과 달리 설계와 시공을 해야만 돌아가는 세상에서 자연의 조물주와 같은 존재는 유감스럽지만 없다. 세상은 학문으로는 과학이요 업무로서는 분업이다. 잘라서 배우는 과학처럼 잘게 나누어서 일을 만드는 분업은 세상의 기본 값, 인간 시간 공간이라는 삼간의 사이를 메꾸면서 업을 통해 일로 가는 지난한 한 생의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반으로 쪼개어 보면 설계와 시공이라는 건축용어로 대별된다. 조물주가 지리에 따라 땅을 만들 때 설계와 시공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하지 않지만 인간이 만든 세상은 분업에 기초한 설계와 시공이 혼재하며 세상이라고 하는 건축물을 만들어 간다.

인간의 한계는 설계와 시공이라는 분업의 굴레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즉 올 마이티 히터는 없는 것이다. 견제받고 제동 하는 세상의 원리 속에서 설계한 자가 시공까지 하기가 대단히 어렵고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인물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일말의 균형감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세상은 이렇게까지 악세로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국강병의 설계와 시공을 한 사람 덕분과 덕택으로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되었지만 오히려 부국강병의 설계와 시공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발생한 꼬투리를 잡는 악독한 인간들의 말에 솔깃하며 넘어가 우리들의 주권을 파는 행위를 서슴없이 하는 안타까운 광경이 다반사로 벌어질 때 우리 대한민국은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것이다.

신출귀몰, 뛰어난 자의 움직임은 신령처럼 나타나고 귀신처럼 사라지며, 별빛처럼 번쩍이고 어둠처럼 미묘히 스며들며, 나아가고 물러남과 웅크림과 펼침이 자유자재하여 흔적조차 볼 수 없다는 회남자 병략훈편에 나오는 말은 기만과 매복 그리고 습격에 능했던 중공군의 전쟁전략일지는 모르지만 국민을 상대로 엉성한 기만으로 평시를 전시처럼 써먹는 매국무리들의 준동이 예사롭지 않다.

그래도 어디선가에는 설계와 시공을 반복하면서 공동체를 지키는 히든 히어로들이 있어서 그나마 세상은 굴러가고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배가 신출귀몰한 회남자 병략훈편 처럼 신령처럼 나타나 귀신처럼 사라지지는 않는 것인지 걱정을 하다가도 망국과 건국, 전쟁과 복구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백 년이 넘는 세월의 무게가 주는 관성 때문에 대한민국호가 변침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한가닥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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