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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 알곡과 가라지

by 윤해

작열灼熱 하던 여름의 태양도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가을비와 함께 서서히 물러가는 춘하추동이라고 하는 자연의 리듬 못지않게 흥망성쇠와 같은 세상의 변화 또한 조변석개朝變夕改 하고 일진일퇴一進一退를 거듭하는 것을 보면 마치 기원전 139년 한무제漢武帝가 만났던 신출귀몰神出鬼沒한 회남자淮南子 병략훈兵略訓을 다시 보는 듯하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평화가 교차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평화라고 하는 것은 그리 믿을 바가 못된다. 전쟁의 소강상태쯤으로 표현되는 평화는 일상의 전쟁으로 고통받는 대부분에게는 그냥 바라고 상상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일종의 가상이며 실상의 세상과 만나면 늘 치열하게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전쟁통의 병략훈兵略訓과 만나게 된다.

신출귀몰神出鬼沒한 회남자淮南子 병략훈兵略訓의 요체는 무엇일까?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겪고 있는 지정학적 위기라고 부를 수 있는 남북분단의 고착을 가져온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전술은 막강한 화력과 보급을 가진 세계 최강군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마치 회남자淮南子의 현신을 보는 듯 신출귀몰神出鬼沒 하게 인식하고 행동했다.

지피지기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천강을 건너고 개마고원과 낭림산맥을 지나 압록강과 두만강에 다다른 유엔군을 상대로 유적심입迂積深入 하고 피실격허避實擊虛 하면서 인해전술人海戰術과 구대전법口袋戰法으로 무장한 파도같이 밀려오는 중공군의 파상(波狀) 공격과 삼수갑산三水甲山의 동장군冬將軍까지 미군은 미 해병전사에서 길이 남을 패전을 당하고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개마고원 장진호를 빠져나와 함흥평야를 가로질러 마침내 흥남부두에 다다를 수 있었다.

1950년 순망치한脣亡齒寒을 내세워 항미抗米하고 원조援朝하기 위해 한반도에 들어와 미국과 격돌한 중공군은 수십 년간 국공내전이라는 실전으로 다져진 군대이며 북한의 지리지형 절기와 기후까지 꿰고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운용하며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기본에 정통한 기습과 기만 공격과 후퇴가 유연한 인해전술을 구사하는 대군이었다.

중공군이 사용했던 인해전술은 3-3 화력조 전술이다. 즉 이 전술에서는 3명이 한 화력조를 구성하고 3개의 화력조가 1개의 분대를 구성한다. 대략 50명 정도로 구성된 소대는 이 화력조를 3개의 열로 구성하여 한 지점을 공격할 때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하는 전술로서 압도적 병력으로 혼전과 근접 전을 병용하여 적에게 공포심을 유발해 적의 사기를 떨어지게 하는 전술로서 국군과 유엔군을 압박했고, 이 전술로 인해 두만강과 압록강까지 전진하려던 한국군과 UN군은 중공군에게 큰 피해를 입고 한강 이남까지 속절없이 밀리게 된 것이다.

알곡과 가라지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에 비유로 설명하신 개념으로, 알곡은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의인을,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 악인을 상징한다. 알곡과 가라지는 농부의 밭에서 함께 자라지만 추수 때가 되면 알곡은 곡물창고에 들어가 잘 보관되지만 가라지는 솎아서 불태워지고 사라진다. 회남자 병략훈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순망치한의 위기를 타개한 팽덕회도 한국전쟁 이후 문화 대혁명 당시 모택동에게 간언한 것이 화근이 되어 가라지처럼 군중들에게 솎아져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이처럼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 못하는 혼군과 국민들을 만나면 아무리 신출귀몰한 병법을 구사하는 회남자라 할지라도 여지없이 가라지가 되어 불태워 없어진다는 것을 역사는 증언한다.

의인과 악인이 혼재되어 있고 악인이 의인인양 으스대며 주권자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는 난세와 악세를 동시에 경험하는 우리들에게 알곡과 가라지 만이라도 구분할 수 있는 분별심이 오히려 회남자가 한무제에게 바친 병략훈 보다도 훨씬 더 신출귀몰한 병략훈이 되지 않을까? 답답한 마음에 서늘한 가을비를 핑계 삼고 곧 떠오를 한가위 보름달을 의지 삼아 은야침투隱夜浸透 하는 심정으로 글 한 편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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