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사람을 내어 놓고 땅은 사람을 기른다. 이렇게 시작되는 천 지 인 사상이 동서양 문명의 뿌리이다. 천지인이 꿈틀거리고 용트림하고 먼지구름을 일으키면서 인간이 만든 세상은 요동친다.
그 세상의 요동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파문은 인문이 되어 갖가지 종류의 인간 군상들이 때로는 선하게 때로는 악하게 세상을 무대로 나비의 날갯짓 마냥 비행경로를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이 세상만사의 흐름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라는 세상의 이치는 우주적 존재이기도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시도 쉬지 않고 업을 만드는 인간 군상들에게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마치 분무기처럼 세상에게 마구마구 업을 뿌려대지만 그렇게 뿌려댄 업이 어느 순간 깔때기처럼 모여서 레이저 광선 보다도 강력한 힘으로 자신을 송두리째 날려 버릴 수 있다는 역사를 통해 반복되는 진리 앞에 지금의 그들이 조금이라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면 지금처럼 어리석은 망동은 하지 않을 텐데 세상은 말이 없지만 티끌 같은 업도 업장소멸 되지 않고 뿌린 대로 거두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사필귀정의 세상 역시 천지인이 만든 사람이 사는 세상이기도 하다.
하늘은 보이지만 높이를 알 수 없고 땅은 느끼지만 너비를 알 수 없으며 인간은 겪어봐도 깊이를 알 길이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을 모른다는 속담처럼 하늘과 땅에 비해 인터널 에너지 Internal Energy보다는 프리 에너지 Free Energy가 충만한 인간은 세상이라는 공간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좌충우돌하면서 하늘과 땅이 보기에는 경거망동하는 철부지처럼 살다가 사라지는 한심한 군상으로 보기에 적당한 행동을 한 생을 통해 수없이 반복하는 가련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 가련한 존재인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비의 날갯짓과 같은 우아한 비행으로 이곳저곳을 분주히 옮겨 다니면서 꿀을 채취하고 꽃가루를 뿌려 자기가 사는 세상을 온통 향기 나는 꽃밭으로 만들고야 마는 나비와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웽웽거리는 요란한 소음으로 시끄럽게 나타나 악취 풍기는 똥통을 기웃거리다가 똥물울 뒤집어쓴 모습으로 나비가 만든 소중한 꽃밭을 헤집고 다니면서 이곳저곳에 더럽고 악취 가득한 오염물을 뿌리고 다니는 똥파리와 같은 인간도 함께 사는 곳이 우리가 발디디고 있는 세상이라는 자각 없이는 늘 분노와 실망 그리고 포기가 일상이 되기 쉽지 않을까?
사람은 고쳐 쓸 수가 없다. 비록 우리가 한 생을 산다 하여도 우리가 지금 여기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내 앞에서 살아가고 사라진 수많은 조상들의 그림자이자 음영에 불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헤아릴 수도 없는 무수한 조상들의 그림자가 나비의 비행이었는지 똥파리의 웽웽거리는 날갯짓이었는 지를 감히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고쳐 쓸 수 없는 사람을 분별하는 능력이야 말로 우리 인류가 빙하기를 거쳐 매머드를 사냥하고 농업혁명과 가축혁명 그리고 산업혁명과 정보화 혁명이라는 지난한 혁명 끝에 마주하고 있는 AI혁명과 AGI 혁명에서까지 반드시 우리가 가져야 할 분별심으로 만든 절대반지와 같은 능력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현실을 우리는 지금 눈이 시리도록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