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의 관계는 겉과 속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mens sana in corpore sano).” 고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가 쓴 시의 한 소절이다. 근대 올림픽을 창시한 프랑스 귀족 쿠베르탱은 이 경구를 올림픽 슬로건으로 사용했다. 쿠베르탱 남작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몸과 마음은 한 생을 살면서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짝꿍과 같은 존재이다.
산업화 초기 무렵부터 한 생을 시작한 세대로서 경험한 세상은 정적인 스틸사진이 아니라 동적이고 다이내믹한 활동 사진을 찍듯이 변화에 변화를 경험하였고, 변화의 변곡점을 지날 때마다 과거의 어두운 기억은 곧바로 기억의 심연으로 보내버리며 바로바로 잊어버려야 다음 변화에 적응하고 살 수 있는 숙명을 타고난 세대답게 개구리가 되고 난 다음 올챙이 시절은 기억하기도 싫은 흑역사가 일반화되었고 이러한 즉각적이고도 집단적인 망각의 습관은 앞만 향해 달려가는 한국 사회를 점차 뿌리 깊은 사회가 아니라 뿌리 없이 덩치만 커지고 마음의 무게보다는 몸의 무게만 키운 고도 비만의 사회를 만들고야 말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몸의 무게를 마음의 무게가 감당키 어려워 아우성 중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도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살면서 몸과 마음이라는 짝꿍이 사이좋고 조화롭게 살면 좋을 텐데 비대화된 몸의 무게를 깃털처럼 가볍고 강퍅하기까지 한 마음이 어찌해 보겠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나도 나라도 몸과 마음과 같은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첨예한 충돌을 하면서 가치관의 아노미 현상은 날이 갈수록 격화되면서 세대 간 지역 간 계층 간 골은 더 깊이 파여가고 기득권 층들은 이 골을 메울 생각은 애당초 할 마음이 없고 어떻게 하면 골을 깊게 파서 자신의 이득을 최대한 도모할까 라는 저열하고 천박하기까지 한 마음을 가지고 날이 새면 충돌하고 투쟁하면서 나라를 사분오열 시키고 있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일단 덩치를 키우고 몸 무게를 불리는 안 간 힘이었다. 망국 후 60년 남짓 식민지의 아픔과 전쟁의 상흔을 지우는 처절한 전후 복구를 거치면서 1960년대 산업화의 시동을 건 히든 히어로들의 몸의 무게는 깃털처럼 가벼웠으나 조국 근대화를 향한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신 한국에 대한 열망과 마음의 무게만큼은 그 당시 어떤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묵직한 무게였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팩트이다.
그때 산업화 히어로들의 묵직한 마음의 무게가 중화학 공업입국이라는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였고, 대한민국호는 지나간 60년이라는 오욕의 역사를 마감하고 새로운 60년의 미래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여 120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지나 인간의 한 생으로 보면 환갑과 진갑의 한 바퀴를 돌리면서 2025년 지금 여기에까지 달려왔다.
몸의 무게와 마음의 무게가 환갑과 진갑이라는 120년 세월의 성상을 거치는 동안 무게 추가 마음에서 몸으로 옮겨가는 동안 세계 패권질서는 제국주의에서부터 동서냉전, 팍스 아메리카나를 거쳐 또다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제국주의로 회귀하는 한 바퀴를 돌리고 있다.
세계 패권질서가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흐트러지는 순간에 우리는 서 있고 미국은 스스로 세운 팍스아메리카나의 패권 질서를 허물고 새 판을 짜느라 세계는 분주하고 뒤숭숭하다.
나라 안팎으로 뒤숭숭 하지만 결국 세계 패권질서의 새로운 판 역시 몸의 무게와 마음의 무게라고 하는 불변하는 원리와 섭리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다만 기존 팍스아메리카나 질서하에서 린치핀 역할을 하며 알게 모르게 미국의 호혜와 지원 속에서 몸의 무게를 한껏 키우고 마음의 무게는 내려놓은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 이러한 새로운 질서의 격랑과 파고 앞에서 깃털 같은 처신으로 천금 같이 무거운 대한민국을 아무런 협상력도 가지지 못한 채 침몰시킨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망국의 을사오적으로 기록됨은 물론 우리 후대들은 다시는 되돌아가기 싫은 제국주의 질서 안에서 120년 전 망국의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는 역사의 평행이론 앞에서 우리 모두는 개구리 올챙이 시절의 흑역사라도 소환해야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세상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