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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 막걸리 한잔

by 윤해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인 2020년 1월 20일 미스터 트롯의 영탁가수가 막걸리 한 잔을 부르면서 장안에 공전의 히트를 쳤고, 그해 5월 13일 영탁의 생일에 맞춰 경북 예천군 용궁면에 소재한 예천양조에서는 영탁 막걸리를 출시할 정도로 막걸리 열풍이 불었다.

술술 들어간다고 술이라 했던가? 에티오피아의 한 목동이 벼락 맞은 커피콩 열매를 우연히 맛본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의 로스팅 커피 세상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술의 역사는 커피 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장구한 발효의 역사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을 주장하며 두주불사斗酒不辭를 외치던 수많은 영웅호걸들을 술독에 빠지게 하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국가의 흥망성쇠에도 관여하여 폭군들을 주지육림 속에 가두었던 종류도 다양한 술은 술로 세계사를 쓰도 될 정도로 인류와 공진화하고 있고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희석 증류 발효 등 갖가지 과학기술로 술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국가와 지역 그리고 개인의 취향과 기호에 맞추어 술을 둘러싼 호불호는 하나하나 헤아리기도 어려운 다양한 술의 종류와 브랜드를 만들어 내면서 술의 가장 큰 특성인 중독의 단계가 몸에서 혀로 혀에서 뇌로 오감을 만족시키는 중독 다양성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분야가 술의 세계이기도 하다.

며칠 전 영탁의 막걸리 한 잔을 결혼식 축가로 부르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여동생 혼인 예식에서 오빠가 부르는 막걸리 한잔의 흐드러진 가락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예식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 본 막걸리 한잔이라는 축가가 나의 염려를 뒤로하고 반전 매력이 철철 넘치면서 예식 분위기를 돋우고 급기야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어깨가 흥으로 덜썩 거리는 것을 보니 트롯의 리듬과 노랫말 그리고 결정적으로 막걸리라는 토속적인 정과 결부된 삼박자의 조화에 그저 아득한 감동이 밀려왔다.

막내아들 딸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기는 매한가지이나 부모가 무고하게 오래 살아야 혼례를 치르고 성가를 시킨다. 나이 든 부모로서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야 겨우 마칠 수 있는 마지막 숙제와 같은 혼례에 축가로 울려 퍼진 막걸리 한 잔은 한 생의 노동을 마친 후 마치 노동요勞動謠를 부르며 마시는 시원한 한 잔의 막걸리를 마시는 느낌 처럼 공감을 더해준다.

까마롱이라고 하는 돌격구호를 외치며 지평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한국전쟁의 물줄기를 바꾼 프랑스 외인부대外人部隊의 처절했던 함성은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 사라지고 없지만 그들의 용맹한 전투의 결과 살아남은 것은 불타버린 지평리에 2층 함석집과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한 채만이 아니었다.

프랑스 외인부대外人部隊의 대대본부로 사용되었고, 1925년 일제강점기 때 문을 연 지평리 술도가가 꿋꿋이 살아남아 마치 프랑스 외인부대外人部隊가 와인부대 Wine部隊로 변신하여 지평리 술도가를 지켜낸 것처럼 지평 막걸리는 한국의 토속와인 막걸리의 명맥을 잇는 것을 넘어 21세기 번영된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브랜드의 토속 막걸리 중에서도 군계일학群鷄一鶴의 명품 막걸리로 거듭나고 있다.

지평 막걸리를 탄생시킨 전설 같은 스토리 앞에서 막걸리 한 잔을 부르고 지평 막걸리를 한 잔 마시면서 프랑스 보르도 와인은 저리 갈 정도의 감별법으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라는 육근육식六根六識을 총동원하고 이에 더해 감정과 기억의 합작품인 과거 현재 미래와 만나 6 ×6 ×3=108 번뇌를 한순간에 날려 보낼 수 있는 명품 지평막걸리를 지켜낸 주인공이 프랑스 외인부대外人部隊 아니 와인부대 Wine部隊라는 기막힌 스토리 텔링을 안주 삼아 오늘 저녁 지평 막걸리 한 잔을 음미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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