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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 일빵빵 소총수, 165명의 보병

by 윤해

군보직 번호(주특기 번호)는 병, 부사관, 준사관, 장교 등 군 복무자의 직무와 특기를 구분하기 위해 부여되는 고유 번호이다. 대한민국 국군은 과거 세 자리 숫자의 주특기 번호를 운용해 오다가 2012년 이후 육군을 중심으로 보다 체계적으로 개편되어 병은 6자리, 장교는 3~4자리로 구성된 주특기 번호를 받고 군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처럼 군 보직 번호는 너무도 다양하여 희귀 주특기 번호는 당사자 외에는 기억하기도 어렵고 군사보안의 이유로 설령 주특기 번호를 알았다 하더라도 무슨 업무를 하는지 알 수도 알아내기도 쉽지 않은 군대 영역 중 하나이다.

그 복잡한 미지의 영역인 군보직 번호 중에 그래도 가장 많고 흔한 주특기 번호가 100이다. 보통 일백이라고 부르지 않고 일빵빵이라고 통칭되는 보병 주특기 100은 일빵빵 땅개라는 군대 은어가 말해주듯이 군대의 가장 기본전력이자 기저 병력이며 승리를 확인하기 위한 필수요원이기도 하다.

아무리 압도적 화력으로 적을 제압하였다 하여도 보병이 발로 직접 걸어가 적군의 심장부에 아군의 깃발을 꽂지 않고서는 감히 승리했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이 전투의 기본이요 원칙인 것이다. 최종적 승리를 확인하는 보병전력의 개입 없이 승리한 군대는 전쟁사에서 결코 존재치 않는다.

달랑 소총 한 자루와 휴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인화기 그리고 구보와 행군, 돌격과 포복에 최적화된 군장을 메고 전장을 누비는 일빵빵 주특기의 보병들을 보면 절로 그 처참함에 모골이 송연하다 못해 숙연해진다. 이들이야 말로 전장의 가장 낮은 데로 임하면서 목에 차가운 군번줄 하나 걸고 치열한 전투의 한 복판에서 전쟁의 참화를 온몸으로 겪어내는 진정한 전사인 동시에 이름 없이 스러지며 소모되는 무명의 히든 히어로들일 것이다.

중공군의 은밀한 매복에 걸려 속절없는 패퇴를 거듭하던 유엔군이 반전의 전기를 마련했던 1951년 2월 13일의 지평리 전투는 까마롱을 외치며 기적의 분전을 이어가고 있었던 프랑스 외인부대만큼 처절하게 중공군의 포위 공격을 막아내고 있던 미 23 연대 대대장 프리맨 대령에서부터 23 연대 2대대 G 중대의 맥기 중위까지 14일 밤 새벽 2시 30분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육탄공격에 노출되면서 피 튀기는 백병전도 불사하면서 8군 사령관 릿지웨지 중장이 약속한 지원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가장 긴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미 23 연대와 프랑스 외인부대가 세상에서 가장 긴 하루를 버티는 동안 1951년 2월 15일 새벽 03시 45분 미 제5 기갑연대 연대장 크롬베즈 대령은 지평리로 출동한다. 탱크는 좌우에 자신의 탱크를 보호해 줄 횡대가 아닌 일렬종대로 나란히 50미터 간격을 유지한 채, 23대의 탱크가 지축을 흔들면서 굉음을 뿜어내며 무려 1,500미터에 달하는 탱크 대열 옆으로 탱크를 호위할 165명 의 보병이 중공군의 매복과 습격에 맞서 교전하면서 지평리를 향해 나아갔고 마침내 일몰 전 오후 5시, 제5 기갑연대 탱크는 미 제23연대의 경계구역 끝자락에 도달했고 10분 후 지평리로 입성하였다. 크롬베즈의 탱크와 함께 출발한 보병 165명 중 살아남은 병사는 고작 23명, 그중 다치지 않은 병사는 불과 10명에 불과했다.

수만리 이국의 전장에서 지평리에서 포위된 미 제23 연대 병사들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처절하게 싸웠을까? 그리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10만이 넘는 중공군의 매복과 포위망을 뚫고 달려온 미 제5 기갑연대의 전차병들 더구나 맨몸으로 탱크를 호위하면서 기어이 지평리에 고립된 4천 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165명의 보병들은 비록 23명밖에 살아남지 못하고 142명의 일빵빵 보병들이 살신성인하면서 이국의 전장에서 그들의 숭고한 피를 뿌리며 스러져 갔다.

GI는 미군 병사 또는 미군 병사를 지칭하는 속어로서 'Government Issue(정부 조달물자)'의 약자이다.
남성 병사는 GI Joe, 여성 병사는 GI Jane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살아서는 GI로 멸칭받고 죽어서는 10종 창고로 입고되는 GI (Government Issue정부 조달물자)의 숙명을 타고난 그들의 운명은 전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용맹과 감투정신을 발휘하는 흔하디 흔한 일빵빵 보병으로 재 탄생되어 전장의 가장 낮은데 임하면서 온갖 희생과 헌신으로 멸망직전의 대한민국을 건져냈지만 그들의 살신성인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귀하고 귀하다.

심지어 그들의 조국 미국에서까지 잊힌 전쟁 forgotten war으로 기억되는 한국전쟁의 참전용사들이 이제는 구순의 노구로 대한민국을 방문하거나 소식을 들을 때면 어김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전장의 가장 낮은데에서 포복하고 지켜낸 대한민국이 이제는 번영된 선진국으로 발전한 모습을 보면서 그들과 그들 옆에서 싸우다 죽어간 전우들은 이제 더 이상 GI 아니 일빵빵 보병이 아닌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용사로서의 자긍심과 보람을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죽기 전에 확인하면서 느낀 뜨거운 감격의 눈물은 아니었는지 오늘날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더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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