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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 생각하는 사람과 반가사유상

by 윤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으로 근대 철학의 포문을 연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였던 1596년생 르네 데카르트는 방법론적 회의를 통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의심하더라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진리라 확신하고는, 이를 모든 학문의 최우선 원리로 정립하였다. 그리고 데카르트 철학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1840년생 오퀴스트 로댕이 1880년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생각하는 사람'은 서양철학의 실현이자 투박한 맨 얼굴이 그대로 투영된 불세출의 조각품으로서 의미 심장한 작품이다.


우리는 서양의 조각품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나 그 보다 먼저 1500여 년의 시공을 거슬러 제작된 동양 불교미술의 걸작품 반가사유상 半跏思惟像을 보면서 단순히 미술품으로 감탄하기 이전에 생각生覺과 사유思惟란 무엇일까? 의문부터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의문의 출발은 우선 생각이라고 하는 말에 고정관념이 잔뜩 끼어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생각이라고 하는 단어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은 살아 있음을 깨닫고 느끼는 일련의 모든 행동을 의미한다. 생명체로서 살아 있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데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것이 무엇이 대단하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살아 있음을 느끼려면 죽음을 이해해야 가능하고 죽음이라고 하는 필멸적 존재로서의 나를 인식하는 순간 비로소 삶의 덧없음을 느끼게 되며 그때서야 비로소 사각死覺의 반대 생각生이라는 것을 하고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투박한 질감은 비록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하는 나라고 하는 남성성 에고의 생존 본능을 일깨우는 느낌이지만 이에 비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의 매끈한 질감과 날렵한 곡선 그리고 은은한 미소는 절제된 여성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동양과 서양은 공간을 달리하면서 시간을 뛰어넘거나 거슬러 올라가면서 결이 다른 유형의 인간을 창조했다. 즉 생존본능에 따라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어내기도, 순수이성에 따라 사유하는 인간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서양은 생각을 통해 물질문명이라는 생존에 필요한 실질을 갖춘 반면에 동양은 사유를 통하여 정신문명이라고 하는 지속가능한 세상의 토대를 쌓아왔다.


동서양의 문명은 누가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다. 다만 그들은 생각과 사유를 통하여 결이 다른 문명과 세상을 만들어 내었고 그들이 접촉하자마자 동서양의 문명과 세상은 요동치면서 뒤섞이고 본능과 이성에 따라 제3의 사람과 인간으로 변모하고 진화된 결과가 지금 우리의 얼굴과 모습은 아닐까?


1942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칼 야스퍼스에게서 철학을 배우고 있던 일본인 시노하라篠原正瑛가 내민 고류지(廣隆寺·광륭사)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흑백 사진 한 장으로 칼 야스퍼스는 물론 세계 미술계는 격동했다. 칼 야스퍼스는 “내가 철학자로서 오래도록 추구해 온 ‘완성된 인간 존재의 형상’을 완전무결한 모습으로 드러냈다.”라고 하면서 “그 얼굴의 고요함, 사유의 깊이가 응축된 듯한 표정, 움직임을 멈춘 몸 전체에 흐르는 균형과 절제는 인간 존재가 시간적 제약을 넘어선 어떤 영원한 경지에 도달했음을 말해주는 듯하다.”라고 칭찬을 이어가면서 “그것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간 실존 속에서 영원한 것이 표정으로 나타난 모습이다.”라고 잘라 말하고 “미륵 보살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이자, 인간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가장 숭고하고 완성된 대답이다.”라고 극찬했다고 전한다.


대항해시대를 통해 서세동점을 시작하고 르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합리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물질문명의 시동을 걸면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조각상을 통해 근대인간의 원형질을 창조했다고 자부했던 서양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극동의 섬나라에서 온 제자가 건넨 한 장의 흑백사진 속의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보고 문화적 충격을 먹은 이유는 생각과 사유의 극명한 차이를 느끼고 이해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여전히 물질문명의 생존본능이라는 생각 안에 갇힌 서양의 기세 앞에서 풍전등화의 처지가 되어버린 동양이었지만 이미 생존본능이라는 생각을 돌파하고 순수이성이라는 사유의 경지까지 다다른 부정할 수 없는 증거물인 반가사유상의 은은한 미소 앞에서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년 2월 23일~1969년 2월 26일)라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하이데거와 함께 독일 실존철학을 창시하였고, 현대 문명에 의해 잃어버린 인간 본래의 모습을 지향했던 그 앞에 나타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은 영감과 충격을 넘어 인간 원형질의 생생한 현신을 본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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