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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 노네임 라인과 무명용사

by 윤해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을 이어 면을 만들고 면을 세워 공간을 창조하며 공간이 바뀌면서 시간은 흐르고 유한한 시간을 사는 인간은 시간 안에서 명멸하는 가련한 존재다.

언제 왔는지는 똑똑히 기억하지만 어느 때 갈 것인 지는 누구도 모르면서 우주의 티끌 같은 한 점에서 시작하여 생명줄 같은 선을 타고 지구에 와서 그것이 마치 영원할 것 같은 동아줄이라 착각을 하면서 세상과 대면하여 수많은 면면을 연결하면서 살아갈 공간을 마련하고 그렇게 마련된 공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을 처절하게 목도하면서 비로소 업장소멸의 이치를 절감하고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는 점에서 시작하여 선으로 흘러가고 면을 쌓으면서 공간을 만들어 인간이라고 하는 껍데기로써 한 생이라는 시간을 겪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머리에 떠오른다.

이처럼 점, 선, 면 그리고 인간, 시간, 공간이라고 하는 삼간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한 생의 의미는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희박한 확률을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점, 선, 면이 만들어 가는 이승의 국면은 어디로 튈지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 한 치앞도 알 수 없는 안개 속이며 칠흑 같은 어둠의 연속이다. 결국 인간은 시간이 이끄는 대로 새로운 국면에 적응하고자 한 생에서 나름대로의 공간을 창조해 나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받고 운명에 따라 여기서 저기로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동하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전쟁과 평화, 전시와 평시에 가장 극명하게 갈리고 드러나는 것이 점, 선, 면이요 인간, 시간, 공간이다. 평화로운 평시에는 잘 보이지 않거나 경계가 모호한 점과 선과 면들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에서는 삶의 경계가 순식간에 드러나듯이 점, 선, 면이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해지며 뚜렷하게 요동친다.

1951년 5월, 중공군의 춘계공세가 거세지면서 국군과 유엔군은 4월 22일 사창리 전투 패배, 5월 15일 현리전투 패배의 여파로 의도치 않게 중공군을 한반도 중부 산악지형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여, 용문산 앞까지 유인할 수 있었다.

1950년 겨울 낭림산맥 적유령산맥 개마고원 아래 장진호에 갇혀 중공군에게 궤멸적 피해를 입고 속절없이 후퇴를 거듭하면서 워커 장군은 전사하고 맥아더 장군은 해임되었으며 그의 후임으로 릿지웨이 장군이 동경 극동군 사령부로 전보되면서 공석이 된 미 8군 사령관에 부임한 밴플리트 장군이 가장 먼저 한 일이 서울 절대 사수의 의지로 수색- 북한산 -덕소 -용문산 -홍천 -한계령-속초라고 하는 지점을 연결하여 노네임 라인 No-Name Line이라고 하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전선(戰線, Front Line)을 확정한 것이다.

노네임 라인 No-Name Line은 Phase Line이라는 전략선으로서 물러설 수 없는 방어선 Defense Line을 확보하여 교전선 Line of Contact을 용문산으로 정하고 중공군의 인해전술과 구대전법 (口袋戰法·큰 자루 전법)에 당했던 치욕을 씻고 용문산을 중심으로 한 중부 산악 지형을 십분 활용하여 고지를 중심으로 원형방어진지를 구축하면서 중공군 수십만 대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엔군의 거침없는 북진이 빌미가 되어 북한 산악지형에서 중공군의 매복에 걸려 속수무책으로 도로 38선 이남까지 밀렸던 유엔군과 국군이 현리전투의 대패를 통하여 오히려 중공군 수십만 대군을 한반도 중부 산악지형에 가둔 예상치 못한 시기에 한국군의 아버지 또는 중공군의 전쟁 교관으로 불릴 정도의 전략가이자 대한민국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밴플리트 미 8군 사령관이 지켰던 노네임 라인 No-Name Line이라고 하는 선은 단순한 전선(戰線, Front Line)이 아니라 전략선 Phase Line 이자, 물러설 수 없는 방어선 Defense Line이었으며, 교전선 Line of Contact (LOC)이었고 최전방선 FLOT (FEBA)으로서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자로부터 지켜낸 터닝포인트가 된 마지노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노네임 라인을 사수하기 위해 생즉사 사즉생이라고 하는 불굴의 용기로 산화해 간 이름 없는 무명용사들의 분투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였고 그들이 지킨 마지노선을 노네임 라인으로 명명한 밴플리트 장군은 과연 이름도 없이 산화해 간 무명용사들의 분전을 기대하고 예상이나 했을까? 궁금해진다.

점, 선, 면이 교차하는 치열한 전장, 노네임 라인 No-Name Line 한가운데에서 나라를 구했던 무명용사들 덕분에 대한민국은 적화를 면하고 그나마 휴전선 부근까지 전선을 밀어 올리고 한강의 기적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의 노네임 라인 No-Name Line을 지키기 위하여 이름 모를 무명용사들 No-Name Soldiers의 몸이 총알과 포탄으로 흩어져 산화되었다. 이처럼 지금의 대한민국 번영의 주역은 노네임 라인 No-Name Line을 지켰던 무명용사들 No-Name Soldiers였음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점, 선, 면 그리고 인간, 공간, 시간이 여전히 꿈틀대는 2025년, 저마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유명인들로 세상은 혼탁을 넘어 악세로 달려가고 있지만 평시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노네임 라인 No-Name Line을 지키기 위해 음지에서 분투노력하고 있는 노네임 국민들이 있음으로써 대한민국은 지켜지고 있는 것이며 그들을 향해 대한민국의 주역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노네임 당신이라고 원더걸스가 부른 K-pop 노바디 노바디 바추 Nobody nobody but you를 불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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