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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 천하수안天下雖安, 망전필위忘戰必危

by 윤해

역사는 도전과 응전이 교차하는 전쟁사이다. "천하가 비록 편안하여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기가 온다."천하수안 天下雖安 망전필위 忘戰必危 라고 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대한민국 국방부 청사 정문 왼쪽 숲에 위치한 비석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글을 돌에 새기는 각자의 의미는 그 노력만큼이나 각별하다. 반드시 명심해야 할 일을 넘어 가슴 깊이 새겨 대대손손 전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우리 인류는 글을 돌에 새기는 법이다.

대륙과 만주 벌판을 말로 내달리던 웅혼한 기상의 기마민족이었던 한민족이 고구려와 발해가 멸망함에 따라 한반도 안에 갇히게 된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전쟁과 평화라고 하는 선택압에 따라 민족의 부침은 물론 국가의 흥망성쇠마저도 좌지우지된다고 하는 평범한 결론에 다다른다.

이처럼 국경과 강토는 지도상에 그려진 말없는 선과 면이 아니라 역사라는 시간 속에서 부흥하고 쇠락해 가면서 공간을 창조해 나간 국가 안의 한 점에 불과한 인간들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결과라고 생각해 보면 말없이 그어진 국경선과 강역이 웅변하고 있는 면면과 그에 따른 역사의 무게는 무겁고 비장하기까지 한 것이다.

우리 민족의 천하가 대륙에서 반도로 이동한 뒤 우리는 천하수안天下雖安, 망전필위忘戰必危를 명심하고 살았을까? 기실 따지고 보면 대륙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유목민들과 중원에 정착했던 농경민들 간의 도전과 응전을 뒤로하고 한반도에 정착했지만 한반도 안의 천하도 이합집산의 과정에서 전쟁과 평화가 교대되었지만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한반도에 세워진 국가는 짧은 분열을 딛고 통일 국가를 세웠고 그 통일국가는 신라 천년, 고려와 조선 천년이라는 천년왕조를 세우면서 우리 민족이 대륙을 뒤로하고 한반도로 들어온 소기의 목적에 부합되는 역사를 만든 것도 사실이다.

팍스 시니카 시절 이소사대以小事大의 중화를 둘러싸고 있는 남만, 북적, 서융, 동이 라고 하는 중화질서 속에서도 우리나라, 즉 동이의 존재감은 각별했다. 그것이 지정학적 요인이었는지 정치 문화적 이유였는지는 분명치 않아도 늘 중국은 고구려를 무서워했고, 통일신라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알았고 고려를 고려하여 자신의 부마국으로 끌어들이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조선을 구하느라 중원의 주인이 바뀌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국제패권질서는 예나 지금이나 한가롭지 않다. 그야말로 건곤일척의 싸움터이며 벼랑 끝 전술의 경연장이요 종이 한 장의 차이로 대대로 노예로 사느냐 주인으로 사는가가 결정되는 살벌한 전장이다. 패권국마저도 누구와 편을 먹느냐에 따라 패권의 존망이 좌우된다. 패권국은 패권질서 전체를 아우르고 의사결정을 한다. 그렇게 평가를 거친 국가 중에 뽑힌 넘버 2 국가 만이 패권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패권질서의 수혜를 입고 국가와 국민을 번영으로 이끄는 행운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천하가 수안 하지도 않고 일상이 전쟁이라 전쟁을 잊을 리도 없고 매일매일이 위기임을 국민 모두가 절감하고 있지만 역사의 교훈이 가리키고 있는 지점은 외환이 아니라 내우이다.

우리나라의 출발 자체가 세계 패권질서 하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나아가 번영할 수 있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건국된 나라답게 나라의 터를 대륙에서 한반도로 이동한 강력한 지정학적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팍스 시니카 시절 중화사상이라고 하는 패권질서의 소프트 웨어까지 학습하고 주도하면서 소중화라고 자처하기도 하면서 패권질서의 넘버 2로 자리 잡으면서 국가의 정체성과 주권을 지켰지만 격변하는 서세동점의 대항해시대 서양제국주의의 주구 일제에 의해 허망하게 국권을 내어주고 한세대 이상 절치부심 하였지만 냉전과 열전으로 담금질된 동서냉전의 전쟁터로 한반도를 내어주고 폐허가 되고 반으로 잘린 남한이 팍스 아메리카나라고 하는 새로운 패권질서의 린치핀으로 기어이 일어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부활이 단순한 기적으로 치부하기에는 한민족이 한반도에서 펼쳤던 패권질서를 좌우했던 뚜렷한 족적과 역사의 평행이론이 만만치 않음을 절감한다.

미래는 현재의 우리가 가져오는 법이다. 팍스 아메리카나에 도전하는 중국이 벌이는 삼국지와 손자병법이 난무하는 세계패권질서는 수시로 요동치면서 소중화이기도 하고 스몰 아메리카이기도 한 패권질서의 린치핀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패권질서의 넘버 2 국가로서 생존과 번영을 누리느냐 아니면 패권질서의 주구에게 던져지는 먹잇감으로 전락하느냐의 역사적 선택 앞에서 지금도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 안의 전쟁의 심각성을 잊어버린다면 천하가 비록 편안해지더라도 내부의 매국세력을 척결하지 못하면 반드시 위기에 빠진다는 천하수안天下雖安, 망전필위忘戰必危의 비문을 돌에 새기듯 국민 각자가 가슴에 새기고 행동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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