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해 록] 감정과 기억, 기분과 태도

by 윤해


2026.04.04

어디 가나 벚꽃이 만개한 잔인한 꿈의 계절 4월이다. 목련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고,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는 4월의 감정과 기억은 그대로 기분이 되어 멀리 떠나와 이름 모를 항구에서 배를 타고 떠나는 행동에 이르고, 돌아온 4월의 생명력 앞에서 빛나는 꿈과 이름 모를 무지개 계절이라는 4월의 노래에 주옥같은 노랫말을 남긴 시인 박목월이 느꼈을 기분과 태도가 궁금해진다.

일본을 가보지 않고 일본을 이야기한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1944년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고 출간한 국화와 칼은 생존을 위해 생활에 녹아있는 혼네와 다테마에, 즉 일본어로 속마음(본심)과 겉마음(사회적 태도)을 구분해 말하는 개념처럼, 겉으로는 다테마에(겉마음)를, 속으로는 혼네(진심)를 쓰는 일본인 특유의 이중적 문화 코드를 국화와 칼이라는 촌철살인으로 압축하였고 대륙과 해양 사이에 낀 섬나라 일본인의 감정과 기억 그리고 기분과 태도를 이해하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이중적 문화코드를 가진 일본은 나라를 대표하는 국화國花에서도 일본 황실의 상징은 국화菊花이며, 일본 국민의 관습상 국화國花는 벚꽃이기도 하여 도쿄 타워, 후지산, 신칸센 등과 함께 일본의 상징처럼 여기지는 꽃이 벚꽃이기도 하다.

일본 국민들의 감정과 기억 나아가 기분과 태도까지 좌우하고 있는 벚꽃은 영화드라마, 가요, 소설 애니메이션과 같은 일본의 대중문화에 깊숙이 녹아들어 벚꽃이 휘날리는 배경과 벚꽃을 소재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작품이 넘쳐난다.

차디찬 겨울을 깨우는 설중매 매화를 필두로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산수유 꽃이 산 골짜기를 노랗게 물들일 때쯤 봄을 깨우는 개나리 진달래가 전하는 화신이 남도에서부터 거칠게 북상을 시작하고 온 나라가 봄봄봄을 외치며 만개한 벚꽃을 보기 위해 생업도 뒤로 하고 화무십일홍이라 외치며 달려가는 빛나는 계절 봄 벚꽃 놀이야 말로 봄꽃의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이처럼 꽃에 꽂히는 감정이 기억이 되고 기억이 기분을 만들고 기분이 태도를 만들면서 태도가 삶을 결정하는 인간세상에서 꽃이라는 식물의 생식기를 엿보면서 열광하는 인간의 태도야말로 다분히 이중적인 것이며 관음적이기도 한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본다.

씨가 자라 나무가 되고 나무에서 가지가 뻗어 가지 끝에 떨어질 듯 위태롭게 매달린 꽃망울이 영글어 마침내 한 송이 꽃을 피우는 대자연의 섭리를 보고도 세상의 원리에 갇혀 치열하게 피고 지는 꽃잎의 수고로움 보다는 형형색색 피어나는 꽃망울의 아름다움에 취해 헤매다 보면 짧은 봄은 봄꽃을 시샘하는 봄바람과 봄비에 묻혀 눈 깜짝할 새 사라지는 화무십일홍의 허무에 갇히기 십상이다.

일본 요시노도 유네스코 세계유산紀伊山地の霊場と参詣道에 포함되어 있는 단 한그루의 연분홍빛 수양벚꽃을 바라보면서 2차 세계대전을 패망으로 이끈 단 하나에 모든 승부를 거는 일점호화주의 一點豪華主義라고 하는 일제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면서 요시노 벚꽃을 쳐다보는 벚꽃, 마주 보는 벚꽃, 내려다보는 벚꽃, 세 계층으로 나누어 우리의 인생사도 쳐다보는 사람, 마주 보는 사람,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음을 깨달아 가고 있는 글벗의 요시노 벚꽃 상춘기가 벚꽃처럼 화려하고 일본처럼 이중적이다.

내가 요시노 벚꽃을 보지도 않고 글벗이 느꼈을 감정과 기억 기분과 태도를 미루어 짐작한 것은 일본에 가지 않고 일본인의 이중성을 간파한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의 심정과 일맥상통하였다고 우긴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흩날리는 벚꽃에게 한 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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