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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는 결핍을 낳고 결핍은 또 다른 풍요를 낳는다

by 윤해



2024.06.01

아프리카를 떠난 호모사피엔스가 초창기 절멸의 위기를 넘기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 70억 인류가 된 지금 돌이켜 보면 생물학적 번성의 동인이 수많은 기후환경과 먹이사슬 경쟁에서 승자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외부의 적과 치열하게 싸워 이겨 지구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로 우뚝 서 지구자원의 대부분을 독식하게 된 자원의 풍요를 경험한 우리 인류는 그 풍요를 바탕으로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 지혜자로서 사유의 결핍을 충족시키면서 생태학적 풍요를 극복하고자 노력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로부터 수만 년, 생태학적 풍요는 물론 지혜자로서의 결핍도 문명과 문화를 통해 풍요로 뒤바꾼 우리 인류의 앞날에 또 어떤 결핍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고 다만 짐작할 따름이다.

분명한 것은 생태학적 생물로서의 우리 인간의 모습이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나고 먹고 자라고 번식하고 늙고 죽는다는 지구 생명체로써의 한계를 우리 인류는 새로운 결핍으로 인식하는 단계에 와 있다.

늘 결핍을 풍요로 치환한 성공경험을 가진 인류가 이 새로운 결핍을 느꼈다면 그동안의 행태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인류문명의 발전 방향이 생물로서의 인류가 새로운 사이보그로서의 인류로 나아가지 않으란 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최첨단을 달리는 현대문명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가 남녀 간 만남이 아주 어렵다는 것이다. 농경 사회와 산업화 사회 정보화 사회 이제 인공지능 사회까지 인간의 짧은 한생 중에 격변하는 사회상을 모두 몸으로 경험한 우리들은 롤러코스터 같은 남녀 생태계의 변천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

남존여비 사회의 남아선호를 거쳐 남녀평등 사회의 여권신장을 경험하며 페미니즘 사회의 알파걸의 출현까지도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회가 변모하고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어 남녀 간의 사랑의 풍속도 마저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바뀌고 있다.

야바위 보쌈 같은 농경사회의 약탈혼 풍속이 아득한 과거의 악습으로 인식되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로맨스의 시대는 저 멀리 저물고 오늘날 우리의 젊은이는 옷깃을 스치려다 털끝하나라도 건드리면 단발령에 반대하여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훼상이 효지시야라는 효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듯이 죽기 살기로 고소하고 고발하는 인연의 시작이 아니라 악연의 시작이 되고만 페미니즘 사회의 한가운데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살고 있다.

이렇게 어려우니 초식남이 속출하고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생물학적 번식은 농경사회의 다반사에서 지금은 가뭄에 콩 나는 경우가 되어가고 있다.


남녀 간의 섬싱이 드문 드문해 지고 연애는 힘들어지고 결혼은 상류층의 문화쯤으로 요원해지며 모두가 배운 오늘날 그 어려운 결혼을 하고도 출산을 한다는 일은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도 마이너스 무한대의 숫자만 가리키고 있으니 우리의 겉똑똑이들이 생물학적 번식을 포기하는 것은 어쩌면 합목적적 결론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출산의 결핍을 무엇으로 메우고 극복할지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문명의 방향은 생물학적 번식을 어렵게 하고 출산의 영역까지도 과학적 기술이 개입되는 인공적인 번식의 단계로 접어든 느낌이다.

생물학적 번식은 때가 있다. 고령화 사회이기도 하지만 산모의 나이가 고령화되면 생물학적 출산은 난망이 된다. 점점 더 의학의 도움이 출산에 가해질 때 비로소 가족을 이루는 풍요 속의 결핍의 시대에 이 결핍을 타개할 혁신적인 해결책은 결국 생물로서 번식의 능력은 점점 더 약화되고 의학이라는 과학의 힘을 빌어 인류가 번식하고 어떤 형태의 사이보그 아기가 대거 출현한다고 가정하면 그렇게 태어나는 아기는 힘차게 우는 대신 예를 들어 카톡 또는 삐리리 기계음으로 출산을 알리는 보이는 미래가 다가와서 저출산의 결핍을 다산의 풍요로 바꿀지 너무 나간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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